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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스며드는 봄의 기운

by 박수진

겨울이 가고 있다. 차가운 공기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얼어붙었던 땅은 서서히 숨을 돌린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지만, 낮의 햇살에는 분명한 온기가 깃들어 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두꺼운 외투의 단추를 하나씩 풀고, 거리에는 조금씩 밝은 색이 늘어난다.

나는 매년 봄이 오기 전, 손끝으로 계절의 변화를 먼저 느낀다. 손을 뻗어보면 공기의 질감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울의 공기가 단단하고 날카롭다면, 봄의 공기는 부드럽고 촉촉하다. 손바닥을 펴서 하늘을 향해 올려보면,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내 손끝에 내려앉는 것 같다.

며칠 전, 오랜만에 집 앞 공원을 걸었다. 가만히 나뭇가지를 살펴보니, 아직 앙상한 줄기 끝에 조그맣게 싹이 돋아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만져 보았다. 단단한 가지와는 달리 새싹은 부드러웠다. 겨울을 이겨낸 것들이 봄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작고 연한 것들을 손끝으로 느끼며 속삭였다.

"이제 곧 봄이 오겠구나."

봄의 기운은 손끝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스며든다. 무채색 같던 나날 속에서도 어딘가 작은 기대가 움튼다. 따뜻한 햇살이 스치고, 바람이 살랑이며 스며들 때, 마음속 묵은 감정들도 살며시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겨울 동안 깊이 웅크리고 있던 감정들이 차츰 녹아내리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는 봄이 오면 습관처럼 창문을 연다. 손을 내밀어 공기를 한 움큼 쥐어본다. 손바닥 안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 빈 공간 속에 담긴 온기는 분명히 느껴진다. 따뜻한 것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은 형태로 먼저 다가온다. 마치 사람의 온기처럼. 가만히 손끝을 바라본다. 차가운 것들을 지나 따뜻한 것을 만나는 손끝. 그 끝에서, 나는 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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