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들숨날숨을 반복하며 개선문의 꼭대기로 도망가자.
아이고. 한국사람이네. 너희는 누구랑 왔니?
저희는 엄마랑 왔어요.
아빠는?
관광버스에서 내리신 어르신 한 분이 딸아이들을 보시고는 한국인이라는 것에 반가운 나머지 오지랖 넓은 질문을 이어가셨다.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졸지에 우리는 한부모 가정의 당찬 유럽여행으로 인식되었고 관광버스의 어르신 모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엄마가 참 대단하다. 아이들을 어떻게 유럽에 혼자 데려온 거냐며 말씀을 보태신다. 우리에게 쓸데없이 관심이 쏠린 이 부담스러운 공기가 흐르는 공간에서 얼른 사진을 찍고 도망가고 싶다. 옛날 사진 다시 찍기고 뭐고 얼른 개선문 꼭대기로 도망가자.
어르신들의 부담스러운 공기를 뚫고 인사를 깍듯이 하고 우리는 개선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달팽이 같은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오르는 순간 발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습한 들숨날숨을 반복하는 공간을 오랜 시간 지나와 드디어 개선문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파리의 방사상 12개의 도로가 우리의 두 눈에 담기 벅찰 정도로 시원하게 뻗어 있었고,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에펠탑이 파리의 촉촉한 공기 속에 우뚝 서있었다. 아이들은 개선문에서 보이는 파리의 전경을 오랫동안 감상하였고 나는 파리 사이렌 소리가 뒤섞인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 좋은 파리 전경을 오래도록 마음과 눈에 저장하고 싶었다.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개선문은 1806년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나폴레옹 1세가 건축가 샬그랭에게 명하여 건설한 것으로 개선문 내부 벽면에 가득 나폴레옹 1세 때 전쟁에 참가한 장군 55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이들에게 이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잠시 동안 묵념하는 시간도 가졌다.
분명, 우리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뻗어있는 시원한 12개의 도로처럼 우리의 여행도 순탄하게 뻗어나가길 바라는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