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하루 Jun 15. 2023

사직서를 제출하다.

사직사유는 임금체불로 인한 퇴사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지난 한 달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첫 연차를 쓰고 짧은 여행을 다녀온 돌아온 나를 기다렸던 것은 다름 아닌 임금체불이었다. 뜬금없긴 했지만, 회사 사정이 힘들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근로자로만 살아왔지만, 사업주의 사정도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겠어요. 늦어도 다음 월급날인 6월 9일까지 못해도 한 달 치라도 주셔야 해요.”

갑작스러운 통보에 적잖이 당황한 팀원들을 대신하여 말했다.

"일단 두 달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원상복귀 시켜보겠지만, 그동안 기다리기 어려운 분들은 퇴사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날의 회의는 끝이 났다.


어이가 없었지만, 회사 외적인 곳에서 나의 가치를 창출하려는 생각조차 안 했던 나에게 필요한 경험인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일이 잘 될 리는 없었다. 일을 하긴 했지만 효율은 없었고, 더 이상 재미도 없었다. 팀장님께 일의 능률이 떨어져서 고민이라고 말씀드리니, 월급이 들어오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월급을 받은 것처럼 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월급을 받아야지 하는 생각에 일을 했다. 그래도 끝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여전히 주말도 연휴도 포기하고 일을 했다. 상황이 좀처럼 희망적이지는 않았지만, 함께 난파선에 표류된 팀원들은 제발 6/9에 월급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우리는 우리를 흔히 가족이라고 불렀다. 5명 남짓의 작은 스타트업에서 잦은 야근으로 빚어진 동료애였던 것 같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어느 날 갑자기 일을 하며 합을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팀원들은 서로가 회사생활의 가장 좋은 축복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동료들과 부딪히며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트러블이 생겨도 지지고 볶고 하며 금세 풀어버리는 게 마치 가족 같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끝이 이렇게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팀 멤버 누구 하나라도 서로를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들 한 번쯤 업무에 지쳐 '퇴사할 거예요'라고 장난스럽게 투정을 부린 적은 있지만, 같이 깔깔 웃으며 퇴사금지라는 말로 함께 하고 싶음을 표현했던 우리였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세명의 팀멤버들은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랑 함께 하는 것은 즐겁고 재밌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회사가 정말 잘 되었으면 했다. 회사가 우리 월급을 한 달 치라도 줘서, 우리가 떠날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우리에게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별다른 말이 없었다. 임금체불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 따위나, 언제까지 어떻게 해결이 될 수 있을지, 언제 얼마만큼이라도 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나, 월급 없이 우리가 생활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게 해 줄지 등. 물론 회사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보고할 '의무' 따위는 없었지만, 한 번의 임금체불로 깨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태를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 일말의 노력을 보여줄 수는 있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에 우리는 조금씩 실망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퇴사'라는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우리는 회사에게 무수한 기회를 주었다. 처음 우리에게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팀원들은 본인들의 월급보다는 해외 개발자들의 월급을 먼저 걱정했고, 우리는 계속 회사에게 함께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렇기에 해결책을 가져와달라고 요청했지만, 회사는 우리의 생계에 대한 걱정은 단 한 번도 안중에도 없었고,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대답만 했다.



회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우리는 회사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회사가 좋아서라기보다,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이 좋아서였다. 뭐, 회사 경영진들이 우리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랬기에, 회사를 곧장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있겠다. 하지만, 좋을 때는 좋을 때고, 나쁠 때는 다른 이야기였던 것 같다. 우리를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회사를 더 이상 믿고 가기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중이다. 임금체불로 수입이 없었던 터라 얼른 일을 구해야 하겠지만, 나의 시간을 좀 갖고 싶긴 하다. 1년을 꼭 채우겠다고 다짐했던 것과는 다르게 되었지만, 일을 시작하고 매일 야근으로 너무 바쁘게 달려온 탓에, 한숨을 돌리고 싶다. 이전 직장도 쉽지 않았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 새 직장을 구하는 것이 더 두렵다. 새로운 곳이 괜찮은 직장일 수도 있지만, 이런 팀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지지고 볶던 것이 그리울 것 같다. 우리는 퇴사 후에도 종종 보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함께 손을 잡고 달려가던 날은 이제 우리 앞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Ep. 4 커리어고민에 대한 해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