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더 어른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회사를 공식적으로 그만둔 지도 3주가 다 되어간다.
회사를 그만두고 브런치에 나의 일상을, 나의 상태를 공유하고자 몇 번 시도했으나, 올릴 용기가 없었다.
퇴사를 기점으로 나의 브런치를 지인들에게 오픈했던 까닭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해보았지만, 사실은 회사 때문에 힘들었던 나 자신을 외면하고 싶었던 까닭인 것 같다.
임금체불을 겪으면서 힘들다는 이유로 꾸준히 가던 운동도 잘 못 가고, 다이어트한다고 자제하던 술과 배달음식도 종종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마냥 괜찮다고 생각했다. 웃을 수 있고,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는 있었으니깐. 퇴사 전, 동료와 우리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던 중, 갑자기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나 나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구나라고 생각은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하지만, 퇴사 다음날 동료들과 함께 노무사를 보러 간다고 만난 것을 마지막으로 새로운 일상을 나 혼자 마주하게 되었을 때, 현실은 나에게 그저 달아나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었다.
6월 20일 화요일. 근무 마지막 날이었지만 남은 연차를 태우느라 집에 있던 나에게 건넨 남편의 한마디는 '일자리는 좀 찾아봤어?'였고, 남편은 순수히 궁금해서 건넨 말이었다지만, 그 말은 왠지 모르게 나를 자극했다. 여태껏 너무 바쁘게 달려오느라 쉴 틈이 없었으니깐 이번 기회에 조금 쉴까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꿈깨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던 걸까. 그 말 한마디에 오기가 생긴 난, 가장 쉬워 보이는 한 달짜리 계약직에 지원을 했고, 덜컥 6월 22일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그만 둔지 하루 만에 9시에 출근을 해서 6시에 퇴근을 하는 생활에 나를 다시 구겨 넣었다.
좋은 것은 이전엔 꿈꿔본 적 없는 칼퇴가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업무를 최저임금을 받으며 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고되었다. 바쁜 일이라면 정신이 없어서 나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홧김에 시작한 이 일은 나의 씁쓸한 현실을 자꾸 상기시키기만 했다. 퇴사를 하면 바쁘던 내 삶에 한줄기 빛과 같은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여유는 개뿔.
임금체불만 아니면 괜찮았었는데라고 생각했던 나는 자꾸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자꾸 나에게 일어난 일을 부정하고 싶었다. 마치 꿈을 깨면 현실로 돌아가듯,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꿈인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있던 현실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 앉아있는 게 아닌 그곳에서 내가 갇힌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님을 매일매일 생각해야 했다. 여유가 없는 것은 임금체불로 인한 내 통장잔고만이 아니었다.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들었고, 때로는 아팠다. 그리고,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퇴사 후 3주 동안 나는 내 손에 꼭 쥐고 있던 내가 쌓아온 시간들이 모래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상황이 괜찮아지면 부르겠다는 팀장님의 말을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있었고, 함께 프리랜서 팀을 꾸리거나 창업을 하자는 우리의 바람이 나의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나는 나의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진짜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좋았던 동료들과 더 이상 마냥 예전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 시간들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자주 되뇌었다. 퇴사를 하면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최소한에 집중했다. 일어나 출근을 하고, 퇴근 후 가끔 운동을 하고, 바빠서 잘 못했던 요리도 하고, 점심 도시락을 만들고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갔다. 그러다 보니 퇴사한 지 벌써 2주가 훨씬 지나, 노동청 출석 날짜도 정해졌다.
그렇게 그냥 하루하루 버텨내다 보니, 나에게 일어났던 그리고 현재진행 중인 이 모든 일들을 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왜 인생은 힘들기만 한 걸까라고 생각하던 파헤쳐진 나의 마음밭에 그렇게 새로운 새싹이 바람 타고 날아와 심겼다. 지금 새롭게 자라고 있는 새싹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저 매일매일 햇빛을 쐬어주고, 가끔 물을 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리고 해야 하는 것들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