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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Nov 23. 2016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날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날


 간만에 잠 좀 자보려고 일찍부터 누웠는데 한 쪽 벽에 걸린 액자에 시선이 멈췄다. 꽃다운 내 나이 스물 셋에 한 남자를 만나 독신주의 타파를 외치고 결혼까지 해버렸으니. 아이도 안 갖겠다 해놓고선 스물 아홉에 아이를 낳았고. 이래서 사람 일은 두고 봐야 안다고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


 웨딩촬영에서 선별했던 사진 중 나름 멋지다고 생각해서 저리 큰 액자에 담아 걸어놨건만, 이렇게 누워서 바라보니 별 감흥이 없다. 사실 난 결혼식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결혼 준비를 할 때만 해도 스몰 웨딩 문화가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분수에도 맞지 않는 큰 결혼식장에 꼭두각시처럼 서 있지도 않았을테고, 드레스나 메이크업도 직접 준비했을텐데. 지나가고 나니 더 아쉬워 지는건 뭔지.


 하지만, 내게 있어 프로포즈만큼은 두 번 다시 없을 최고의 프로포즈였다고 자부한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결혼식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은 덮어진다. 내가 스쳐지나가는 말로 했던 워너비 프로포즈를 남편이 기억해 두었다가 몇 년 후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여한은 없다. 


 자취생이었던 남편의 자취방에는 밥솥이며 왠만한 취사도구가 갖춰져 있었는데, 데이트 비용을 아끼려던 우리는 자주 같이 밥을 해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된장찌개와 참치김치찌개를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매우 익숙하다. 요즘도 내가 컨디션이 별로인 날이면 남편은 가끔 참치김치찌개를 끓여주는데, 이상하게도 먹고 나면 다음 날 몸살기운이 좀 나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게 힐링푸드인가 보다.


예전에 보러 갔던 컬투 공연 중 영어 수업


 어느 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쉴 틈 없이 전공 수업에 교양 수업까지 꽉 들어 찬 날이 있었다. 점심도 거의 굶으라는 식으로 짜여진 시간표는 장학금 목표에 눈이 먼 스스로의 탓이 컸다. 불효녀가 이번엔 효도 좀 해보겠단 의욕만 앞서서는, 그 놈의 헝그리 정신이 도대체 뭐라고. 그 때야 젊음과 패기로 버텼겠지만, 지금이었으면 매일이 응급실 행이었을 게 눈에 훤하다. 마지막 수업까지 가까스로 버티고 교수님들의 전매 특허 멘트인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를 듣자마자 부리나케 밥을 먹으러 남편의 자취방으로 뛰어갔다.


 최대한 빨리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며 안구 운동을 하다가 그 마저도 현기증이 나는 느낌이 들어서 대충 메뉴를 정했다. 밥에 통조림 참치만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에 비벼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뛰어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익숙한 냄새 사이로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후줄근한 추리닝 바람에, 두꺼운 검은색 뿔테 안경에, 어찌나 급히도 뛰어왔는지 머리는 산발에. 어색할 정도로 그 날따라 달라 보이던 남편은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에 내가 좋아하는 두부와 약간의 고춧가루 버섯, 양파가 들어간 된장찌개. 많이 먹으라며 고봉밥을 퍼 준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대인배로 보였다. 그 와중에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또 어디서 준비해 왔는지. 어렸지만 제법 예비신랑의 모습을 갖춘 남편은 그렇게 한 쪽 무릎을 굽히며 기필코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아무 것도 아닌 날- 기념일도 아니고, 생일도 아니고, 여느 날들과 다를 게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날, 직접 지은 고슬고슬한 밥과 칼칼한 된장찌개가 올려져 있는 상차림, 그리고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건내는 당신이 있다면, 무조건 yes, yes, YES!!!!!!


 내일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 아들내미도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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