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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Jun 20. 2018

사랑하는 외할머니

부치지 못 하는 편지


 할머니!


처음으로 제대로 된 편지를 써보네,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데.


한 없이 아기같았던 손녀가

어느 새 아이 엄마가 되어버렸어

할머니가 봤으면 너무 좋아했을텐데.


요즘 이빨이 시리고 아픈데

그럴 때면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

틀니를 꼈던 할머니가

껌을 씹고 싶었는데

나한테 단물 다 먹게 하고

내가 씹던 단물 다 빠진 껌 드셨던거.


하얀 나비가 요새 자주 보여

할머니가 나 보고싶어서 인사하러 오셨나보다 했어.

돌아가시던 날에 하얀 나비를 마주했던 이후로

하얀 나비만 보면 괜시리 반가웠거든.


할머니,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딸이
똑같이 할머니가 되서

외손주를 보았네.


이제 엄마도 아파.

허리도 많이 아파하고

갑상선은 치료도 안 받는대.

나 어떡하지, 할머니.

엄마 없는 삶은 생각도 안 해봤는데.


시집 가니까

엄마가 매일 너무 보고싶었는데

엄마가 속상해 할까봐서 꾹 참았어.

나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했잖아.

엄마랑 더 오래 지내다가 조금 늦게 결혼할걸.

그럼 울엄마 손주 보는 게 늦어졌으려나.


할머니,

할머니가 해줬던 매운 쥐치포조림이랑

콩자반이 너무 먹고 싶어.

콩자반 할 때마다 생각나.


여름밤에 잠 못 드는 어린 나를 눕히고

끝도 모를 부채질 해주며

꾸벅꾸벅 졸던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해.

난 우리 아들 잠들게 하려고

에어컨 제습모드로 켰다가 끄는데.


오늘따라 할머니가 너무 그리워.

보고싶어.

내 얼굴 좀 보고가지.

뭐가 그렇게 급해서 할아버지한테 빨리 간거야.

외할아버진 할머니 많이 사랑해주지도 않았는데.

매일 그리워서 손수건으로 눈물 훔치던

불쌍한 우리 할머니...

사랑도 많이 못 받았으면서

외사랑만 하다가 한 많은 세월 다 보내고

나한텐 나만 사랑해주는 신랑 만나라고

매일 부처님한테 절하던 할머니.


할머니 치매였는데도

손주사위 될 사람 얼굴 보고

펑펑 우셨잖아.

그래서 몇 주 뒤에 마음 편히 가신거구나.


할머니,

나 사랑 많이 받고 잘 살아.

지켜보고 있지?

나 잘 살게 할머니.

내 아들도 잘 키우면서 잘 살다가

먼 훗 날에 나도 늙어서 거기 가면

웃으면서 반겨줘.


엄마 너무 빨리 데려가지마.

나 그럼 제정신으로 못 살 것 같아 아직은.

할머니 딸 보고싶어도

철없는 손녀 생각하셔서 조금만 양보해주셔요.

엄마한테 잘 하도록 노력할게.


할머니 살아 계실 때

사랑한단 말 많이 못 한 게

이렇게 후회가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사랑해 할머니!

우리 꼭 다시 만나!

그 때까지 우리 아들 잘 키워서

후회 없이 할머니한테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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