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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Jan 27. 2021

뽀삐가 떠났다

반려견과의 이별

 


 황갈색 털에 까만 단추같이 큰 두 눈과 그 눈 크기만 한 검은색 코... 허리는 길지만 그에 비해 다리는 좀 짧아서 시고르자브종의 자태를 확연히 드러냈던... 그 이름은 뽀삐.


 그렇게 예쁘고 착하고 순하기만 했던 뽀삐가 떠났다. 열흘 가까이 목을 겨우 축일 정도만 물을 마시고 완전히 곡기를 끊었던 아이의 결심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온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만 갔고, 이불을 깔고 담요를 덮어줘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었을까. 아직도 의문이 든다.


 처음에 뽀삐는 유기견 센터에서 안락사 직전의 순간에 놓여있었다. 구조되기 전의 사연은 센터를 통해 들어서만 알고 있었다. 파양을 두 번 당했고, 오토바이에 치여 몸이 밀린 상태로 구조되었는데 검사 결과 심장사상충 2기였단다. 사고에 질병에 파양에 쉴 새 없이 몰아닥쳤던 시련 에 안락사까지 앞두고 있었으니 나의 약속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앞으로 내가 너의 마지막 가족이 되어 어떠한 순간에도 지켜주겠노라고, 절대 내가 먼저 너를 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아이를 데려오며 굳게 맹세했었다.


 2주 전 토요일 저녁에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뽀삐가 마지막으로 가는 길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였고, 아이가 숨을 거두고 나서도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라고 예를 갖추어 장례식과 수목장도 치러주었다. 너무 울어서 탈진 상태가 올 것 같아도 정신력으로 버텨내었다. 아무리 목놓아 울어보아도 아이가 내 곁에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안다. 이 글을 써서라도 아이에 대한 기억을 모두 끄집어내서 기록하고 싶은데, 못해준 것들만 생각이 나서 죄책감만 앞선다. 맛있는 간식 좀 더 사줄걸, 부지런히 일어나서 산책을 좀 더 많이 시켜줄걸... 후회만 남는다.


 너무나 순하고 착하기만 했던 내 새끼... 내 아가...

가족들 주위에서 맴돌기만 하고,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방문 앞만 몇 번 서성거리며 밥 달라고 재촉조차 하지 않던 강아지였다. 혹여 늦잠을 자게 된 날에도 단 한 번도 날 억지로 깨워본 적이 없던... 사람보다 배려심 깊은 강아지였다.


 달려들거나 재촉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마음속 상처가 많아서 그랬던 걸까. 애교는 많지 않았지만 늘 순박한 모습으로 우직하게 우리 주변에서 머물러 있기만 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고개를 위로 올려대며 계속 쓰다듬어 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곤 했다. 영리한 나머지 화장실에서 모든 배변을 훈련 없이 했던, 손이 별로 가지 않던 아이였다.


 뽀삐의 목소리는 자주 들을 수 없는 귀한 순간이었다. 짖은 적도, 으르렁거린 적도 거의 없어서 공놀이를 해서 공 뺏는 시늉을, 그것도 아주 여러 번 해야 아이 목소리를 한 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주변 지인들도 뽀삐가 너무 착하고 순해서 복슬복슬한 등쓰다듬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된다고 말했으니...


 뽀삐가 없는 지금, 모든 기억들이 뒤엉켜서 한바탕 머릿속을 헤집고 가면 숨도 쉴 수 없을 만큼의 슬픔에 잠식된다. 어쩌다 음악을 틀었는데 이별 노래가 나오면, 귀로 박히는 가삿말들이 마치 내 얘기인 것만 같아서 넋을 놓고 울기만 한다. 하루 종일 아무 의욕도 없이 누워만 있는 날이 허다하고, 주체할 수 없이 떨어지는 눈물에 밤마다 안구 통증에 시달린다.


 애증의 관계가 아니라서, 무조건적인 사랑만 주었던 존재였기 때문에 이렇게 아프고 괴롭고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가 보다. 한 편으론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편히 쉴 수 있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여러모로 마음이 착잡하다.


 나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그간 힘들게 한 것이 있다면 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까지 계속해서 뽀삐 눈을 바라보며 말해주었다.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길 바랐다. 평생 뽀삐를 기억하며 살다가 나중에 내 생을 다 마치고 나면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네가 좋아했던 꽃을 들고 찾아 갈게. 사랑해, 뽀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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