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거세게 흩날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햇빛이 쨍하니 떴다가
이내 다시 싸락눈이 떨어지고.
변덕스러운 날씨의 비위를 맞추기엔
아무 힘도 없는 인간인지라
그저 전전긍긍 하늘만 바라보며
말 대신 한숨으로 짧게 하소연을 내뱉었다.
낮잠이 필요한 아이와
휴식이 필요한 나는
차 키를 집어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던,
먹구름 아래 달리는 차 안에서
나의 오후는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아찔한 추위로
정신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거리 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의
공허한 시간은
별 의미 없는 공간 속에서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상대적인 세상에서
아직 날 것에 불과한 나는
희노애락에 취약하다,
날씨의 영향을 받는 걸 보면.
적당히 살고 싶다.
미적지근한 온도를 유지한 채
오늘 오후처럼 살고 싶다.
아무 이벤트 없이 조용하게
어떤 잡음도 들을 필요 없이
그렇게 살고 싶다.
허공 속 무의미한 시간이라도
잡념이 없다면
평온할 것 같은
그런 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