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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Feb 21. 2017

부모의 역할

과유불급



 많은 부모들이 보다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혹은 교육적 팁을 얻고자 육아 서적을 접하지만, 나는 되도록 읽지 않으려 한다. 대학생 때 교직 이수를 하면서 교육학과 관련된 강의들을 많이 들었고, 발표 자료를 수집하면서 꽤 방대한 분량의 아동 발달 관련 다큐멘터리, 논문, 책들을 접한 것이 미미하게나마 도움을 준 것도 있지만, 육아의 현실은 결국 나의 생각과 태도 문제라는 것을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교육 없이 자녀를 아이비리그로 보낸 부모들 이야기, 태어났을 때부터 영재인 자녀를 위해 모든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들 이야기 등등 나와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유난스럽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엄마라서 그런지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그들이 말하는 육아 방식이 내 아이에게 들어 맞을지도 의문이고, 한편으론 부모가 자기 주관과 자신만의 일관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반은 성공한 육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와 아이는 다른이들의 생각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따금씩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도 있지만, 그 때 뿐이다.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정유년을 맞이하자마자 어린이집부터 퇴소시킨 후, 매일 24시간을 붙어 지내고 있는데도 별 다른 일 없이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며 현재를 산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계기는 역시나 부모로서 훨씬 선배이신 아버지의 조언 덕분이었다.


 지난 주 목요일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점심 식사를 하러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아버지께선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그간 내게 하고 싶으셨던 말씀을 어렵사리 꺼내셨다. 잔뜩 긴장한 채로 아버지 눈을 응시했는데 눈매가 한 없이 부드러워 보이셔서 약간 의아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는 제발 건강만 해라, 라고 되내이지만 출산을 거치고 젖먹이가 되었을 땐 제발 모유를 뗄만큼만 커라, 라고 빌다가 젖을 떼고 걷기 시작할 때는 얘는 언제쯤 말을 할 수 있을까, 설마 발달 지체는 아니겠지, 하고 걱정한다고."


 "그저 아이가 사지 멀쩡하게, 건강하게 잘 태어났으면 그 후에는 오롯이 아이의 심신 건강만을 잘 지키는 게 부모의 몫인데, 지나친 욕심으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성인인 부모가 조금 더 기다려주지 않고 어른의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부모들은 몰라."


 "아이를 방치해서도 안되지만 지나치게 통제해서도 안돼. 너의 사고와 방식대로 통제를 하게되는 순간, 아이의 창의성을 네가 막는거야. 애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데, 어른들은 그저 저지레 하고 부모를 괴롭힌다고만 생각해. 아주 작지만 그 작은 뇌로도 자신만의 사고를 충분히 하고 있다고. 그걸 존중해주고 인내하며 지켜봐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야. 그것만으로도 부모로서의 역할은 다 한거야. 무언가를 더 가르치려 하지도 말고, 스스로 알아가는 재미를 선물해줘."


 경청하다 보니 어느 새 주눅이 들어 그간 나의 행동들이 잘못되었구나,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구나, 라는 자괴감에 빠져들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끝맺음이 결국 나를 울렸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네 스스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져야해. 하나의 생명을 사회적 인간으로 키워내는 일을 하고 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길고 험난한 인생 여정이 될 지라도 너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는거야.


 결국 사람 욕심이 아이를 잡는다는 걸,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야 뒤늦게 깨달은 나는 시린 눈물과 함께 심장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육아는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아이와 함께하는 인생도 나의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굳이 놀아줘야 하고, 책을 읽어줘야 하고, 그렇게 나의 에너지를 끝까지 방전시키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토해내야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어졌다. 그저 아이가 혼자 노는 것을 지켜봐주다가 함께 장난칠 땐 웃으며 장난치고, 나도 곁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쉬고,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땐 아이도 좋아하는 과자와 우유를 건내주고 같이 티타임을 즐기면 된다. 빨래, 청소, 설거지는 오늘 안에 언젠가 하면 되고, 못 하면 몇 가지는 내일로 미루면 되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그만 둔 이후로 단 한 번도 소아과를 방문한 적이 없다. 걸핏하면 폐렴으로 입원을 앞두었던 작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말인지 살 것 같다. 내가 일을 하지 못 하더라도, 경단녀가 되더라도 괜찮다, 더 이상 아이가 아프지 않고 웃을 수만 있다면. 오히려 내 정신 상태도 멀쩡해지고, 잠도 늘어지게 잘 수 있게 됐으니 더 바랄 게 없다.


 회식이 없는 날 아이를 재우는 것은 늘 남편 몫이다. 희안하게도 남편이 재우면 아이는 20분 이내로 깊게 잠이 든다. 그냥 옆에 누워서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자는 척을 하면 아이는 자연스레 잔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에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남편에게 참 감사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역할은 단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듯 하다. 아내를 위해주고 배려해주는 것- 그렇게 된다면 모든 가정이 평안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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