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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Feb 21. 2017

2222일

나, 너, 우리의 노력


 오늘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2222일째 되는 날이다. 사실 달력을 매일같이 옆에 끼고 며칠 째인지 일일이 셀 정도로 로맨틱한 아내는 못 된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도 그냥 잊고 지나갔을 정도로 무슨 데이, 이런 것에 굉장히 무관심하고 무감각하다.


 남편은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바로 다음 날 그이가 제일 좋아하는 민트 초콜릿을 두 팩이나 사서 편지와 함께 준 걸로 급히 마무리 지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남자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 best 5 안에 드는 전기면도기야 '무슨 데이'아니라도 몇 달 전 핫딜이 떠서 이미 장만해줬기에 사 줄만한 게 딱히 없었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핸드폰 용량 좀 확보하려고 손이 잘 안 가게 되는 어플들을 삭제해 나가다가 D-day 어플을 간만에 열어보았는데, 우리가 결혼한 지 2222일이나 됐다는 사실이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화장실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팔자주름이 전보다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 세월은 못 속인다고 광대 위쪽으로 기미도 끼고, 피부 탄력도는 현저히 떨어진, 왠 아주머니가 한 분 서 계셨다. 하하하......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후줄근하게 무릎이 다 나온 츄리닝 바지를 입고도, 세수만 겨우 한 내 모습을 보고도 남편은 아직도 예쁘다고 해주니 (물론 전혀 예쁘지 않겠지만 말이라도 곱게 해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될 것을 알기에).


 외출할 땐 내 나름 정성 들여 꾸미느라 정신이 없다. 화장을 하는 감각과 테크닉이 이십대 시절보단 좀 떨어졌겠지만, 아직도 여자로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서 간간히 아이라인도 그리고, 부지런히 1일 1팩도 하려고 하고, 살이 찌면 몇 주간은 다이어트 식단으로 돌입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남편은 토요일마다 농구 동호회에 출석 도장을 찍으러 간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서 집에 돌아온 모습을 보면 물에 젖은 생쥐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만큼 열정적이고 활기차 보여서 좋다. 나는 남편의 운동을 적극 권장하는 편이다. 심하게 다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것도 남편의 숨은 노력일 지 모른다, 나를 향한.


 주말에 우리는 가족끼리 어딘가 가려 하면 서로 한껏 치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최대한 멋지게, 그리고 예쁘게. 포장된 모습도 서로에 대한 긴장의 끈이라 생각하면 결코 포기할 수 없다. 2222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랑한다 말해올 수 있었던 이유같기도 하다.


 사랑받고 싶다면, 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다. 오히려 이기심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서, 내가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 나의 자존감이 높아야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한 일말의 노력은 해야한다. 내 마음이 공허하다면, 채워진 것이 없다면,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고 믿는다. 시궁창같은 자신에게 누가 고운 말을 건내줄까,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길지 짧을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삶이 함께하는 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나부터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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