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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Mar 08. 2017

미안해

올해 첫 감기


 엄마라는 이름의 왕관이 너무 버겁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간혹 있다. 내 모성애가 그리 부족한가 자책도 해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도 저도 아닌 기분에 머물러 있다가도 조금 나아지고, 다시 땅 구석을 파고, 그러한 감정들이 반복의 연속이다.


 어제는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말 꼬리 하나에 심보가 뒤틀려 말싸움으로 번졌다. 다 나의 호르몬 탓이려니 하기에는 납득이 가지를 않았다.


 남녀 사이에서 이따금씩 대화 장벽에 부딪칠 때, 한 사람은 동굴로 들어가려 하고, 한 사람은 당장 끝을 봐야 직성이 풀려서 더 들들 볶아대고, 그러다 우리가 서로 왜 이렇게 상처를 주고 막말을 내뱉어야 하나, 서로 존재의 의미까지 언급하게 되면 아차, 하며 정신이 번쩍 든다. 이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존재가 있으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그 이름, 자식이다.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새삼 깨달았다. 남편도 언성이 높아졌다가 무언의 눈치를 살피고는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살면서 안 싸우는 부부는 없다. 자주 싸우는 것도 문제지만, 안 싸우는 것도 조금은 이상하단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 왔으니 차이점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쌓이는 것도 있고, 사는 데 바빠서 대화를 평소보다 많이 못 했을 수도 있으니까, 잘 싸워서 풀어나가는 것도 나름 지혜로운 것 같다.


 그런데 부부싸움 내용이 돌이켜 보면 '아' 다르고 '어' 달라서, 그야 말로 어이 없는 내용으로 말다툼이 벌어지는데,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괜히 우리 중간에서 아이가 느꼈을 절망감이나 두려움을 인지하지 못 한 것이 실수였다.


 우리도 다툼의 원인이 별 게 아니었기에

조속히 아이 앞에서 화해를 했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도록 그 때 그 때 불만이 있으면 얘기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아이도 덩달아 끌어 안으며 미안하다고,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한다고, 사랑이 가득 넘치는 분위기로 슬쩍 전환하였다.


 아이가 말만 제대로 못 뗐을 뿐, 말귀는 다 알아듣고 행동하는 것을 뻔히 봐왔으면서도 이렇게 새까맣게 잊고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은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아직도 모든 게 미숙한 엄마이고, 나도 완벽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니까, 스스로 다독여 보지만, 터무니 없이 부족한 내가 그저 밉상으로밖에 안 보였다.


 아이는 전 날의 일이 마음에 생채기로 남았다는 듯,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누런 코를 보이며 콧물을 쉴 새 없이 흘렸다. 올해 첫 코감기에 걸려버린 것이다. 가정 양육을 했던 지난 3개월이란 시간이 졸지에 무의미해져버릴 정도로 내겐 충격이었다. 꽃샘추위가 절정이었던 날에 괜히 마트를 데리고 나가서 그랬나, 공기청정기 물을 제 때 못 갈아줘서 그랬나, 유산균을 깜박하고 하루 안 먹여서 그랬나, 별별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어제 우리 부부의 별 의미 없던 말다툼으로 아이가 마음이 아팠기에 그게 몸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조금 더 말을 조심했더라면, 조금 더 화를 가라앉혔더라면......


 그렇게 나의 자책과 반성으로 아침부터 부랴부랴 소아과를 방문했고, 다행히 기관지염은 아닌 콧물 감기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약 기운 때문인지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고, 긴장이 풀린 나도 잠을 쉬이 청할 수 있었다.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우리 모자는 뜨끈한 어묵탕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출근한 남편과 틈틈히 연락을 취하며 아이의 상태를 공유하고, 언제 싸웠냐는 듯이 서로의 끼니와 건강을 걱정하며 살뜰히 챙겼다.


 이렇게 평온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뭐 그리 싸울 일을 만들었는지 지금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나중에 서로에게 밉보이는 짓을 하게 된다면, 다시는 예전과 같은 상황으로 몰아가지 말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아직 나의 자아는 어른 아이같다. 미성숙해서 상처를 쉽게 주고, 사랑을 어떻게 줘야하는지, 아이가 주는 사랑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배운 것은 감정 조절을 잘 해야겠다는 것, 아이 앞에서 말을 좀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점이었다.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엄마가 더 노력할게. 미안해, 아들. 사랑해,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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