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해
공허하다고?
이유를 모르겠어
삶이 무료해
배부른 소리다
아이한테 치이고 집안일에 치이고
내 삶이 하나도 없어
무슨 소리야
너는 평범함을 이루었는데!
위로랍시고
되도 않는 소리 하지마
남들 의식 안 하고 살아왔잖아
당장 내일 뭐 먹지 끼니 걱정이나 하고
널 닮은 예쁜 아이에게 잔소리도 하고
강아지는 오늘도 내일도 너만 바라봐주고
불금에 같이 치맥할 수 있는 남편도 있고
일상에 지칠 때 비빌 언덕인
양가 부모님 계시지.
폭탄맞은 집처럼 어지럽혀진 바닥이
무뎌지는 것도
해야할 설거지와 빨래가 늘어날 뿐
외롭지 않은 것도
주말마다 등급 할인 쿠폰 쓸 겸
아이 풀어놓을 겸
마트에 쓸데 없이 돈 쓰러 가는 것도
자기 의지와 다르게 어쩔 수 없이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어댈 수 있는 것도
모두 네 삶이고 네 일상이고,
평범함을 꿈꾸는 이들의 모든 소망을
넌 다 가졌잖아.
네가 주체가 아닌 시간들이 어디있어?
온라인 쇼핑으로 소소한 사치도 할 수 있는
너의 삶을 칭송해봐.
아름답지 않아?
길거리에서 비명횡사 할 가능성은 적잖아.
사랑하는 이들이 아직 곁에 있잖아.
당장의 끼니도 자유롭게 해결할 수 있잖아.
주말마다 놀러다닐 수 있잖아.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아껴서라도 언젠간 손에 쥘 수 있잖아.
너의 그 소중한 일상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
세상을 봐.
넌 상위 1%의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몰라.
소소한 걱정거리로 너의 삶은 풍족해.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또한 그 말을 할 수 있는 너는
모든 평범함을 다 이루었으니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