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잼병이었던 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음식을 가려 먹어야 했던 모유수유 기간을 지나오면서 극심한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니 소소하게나마 해소할만 한 무언가가 절실해졌다. 비흡연자인 나로서 담배는 냄새조차 싫으니 손 대기가 꺼려졌고 그 대신, 아이를 재운 틈을 타 마시기 시작한 술이 삶의 낙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시뻘개진 내 얼굴을 거울로 마주하는 재미도 쏠쏠해졌을 뿐 아니라 취기가 올랐을 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 신선한 기분이 좋아졌다. 부정적이었던 생각들을 떨쳐내기에도 술만 한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알코올의존증은 아니다. 은근히 살찌는 것에도 민감하기에 충분히 자제하며 마시는 편이다. 주량도 어디가서 명함 내밀 정도조차 못 되기에 그저 맥주 한 두 캔, 와인 두어 잔 마시는 걸로 그친다. 또, 고주망태 되는 것은 극도로 싫어서 횟수도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로 제한한다. 나름의 원칙이 존재하는 셈이다.
예전에 나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남편과 함께 기울이는 술 잔이 좋다. 짠- 하고 부딪치는 청명한 소리, 식도를 자극하는 목 넘김, 코로 넘어 오는 알콜향이 기가 막히게 좋다. 안타깝게도 나는 소주파가 아니다. 양주는 비싸서 입에 대 본 적도 없다. 의외로 막걸리나 동동주같은 탁주가 잘 받는 편이다. 남들은 마시고 난 다음 날 두통이 온다는데, 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체질 하나 참 희안한 편이다.
이번 주는 내내 연휴라 그런 지 술자리가 잦아졌다. 낮에 되도록 집에 있지 않고 활동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숙취가 오래가는 것 같지 않다. 피로한 간을 위해 몸에 좋다는 음식도 마다하지 않고 잘 챙겨먹으려 노력한다. 야채와 수분 섭취가 제일 중요한 듯 싶다. 그래야 저녁에 기분 좋은 술자리를 또 맞이할 수 있을테니까.
아이가 꿈나라에 간 후 마시는 술은 꿀만큼 달콤해진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떤 해방감과 자유, 여유로움이 한 꺼번에 몰아닥치면서 갑자기 상승 기운으로 접어든다. 없던 기력도 회복되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되게 쓸쓸한 장면이다. 웅크려서 전등도 다 꺼둔 채 최대한 조용히 술을 넘기며 속닥속닥 저음으로 말을 하게 되는데 이 마저도 분위기 좋게 느껴진다는 게 조금 슬프다. 왁자지껄하게 놀 수만은 없는 나만의 시간이라니.
그래도 밤술은 언제나 옳다.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즐기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