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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Aug 03. 2017

내 남편이 사는 법

한결같은 마음


 남편은 내게 말했다. 자신은 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나에게 장기간 투자를 하겠다고.


 뜬금 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그이의 눈빛은 미동조차 없이 덤덤했다. 그리곤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해보고 싶은 일이라던지, 당신처럼 무언가를 꼭 해봐야 한다는 욕구나 흥미가 없어. 지금 이대로가 좋아, 행복하고. 평일에 그냥 주어진 일들 제대로 처리해놓고 주말에 당신이랑 아기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거 사먹고, 그러는 게 내 행복이지 다른건 필요없어.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의미하게 백화점 같은 곳 돌아다녀도 당신이랑 아기랑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소소한 하루 보내면 나한텐 그게 행복이야. 그래서 주말이 기다려지고."


 이 남자, 참... 소탈한건지 욕망이 없는건지. 정반대로 사는 나는 이 것도 도전해보고 싶고, 저 것도 배워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 같은데 우리 남편은 그런 것이 없단다. 정말 소박하다 못 해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다.


 아이를 낳고 조금 키워놓으니 내 몸 상태를 되돌려 놓기 위해서 운동도 해야겠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늙어서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기술 하나는 배워두어야겠다 싶어서 요가 강사라던지 이탈리안 바리스타 트레이너 자격증이라던지 알아보고 있었는데, 우리 남편은 그런 나에게 과감히 다 투자해주겠다니.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연애할 때도 남편은 그랬다. 자신에게 쓰는 돈은 너무 아까워 하면서 나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 하기는 커녕 모자르면 벌어서라도 아낌 없이 주는 사람이었다. 치킨을 둘이서 세 마리를 시켜먹던 가난한 대학 시절에 식비가 모자르면 안 된단 생각으로 밤샘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했던 남자다. 이 사람이라면 정말 나를 굶기진 않겠구나, 라는 생각에 의심할 여지 없이 어린 나이에도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다.


 역시나 지금까지도 그러한 내 믿음에 스크래치 하나 가지 않게 하는, 한결같은 우리 남편이다. 그래서 철 없는 나는 스스로 경험해보고 싶은 모든 것에 망설이지 않고 도전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르다. 나보다는 남편이 무언가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우선이었다. 내가 행복한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그 어떤 반박도 할 수가 없다.


 남편이 쳐 놓은 울타리 안에 나는 크나큰 시련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그 안에서도 불평 불만을 해대며 남편을 갈구었던 철 없는 아내였다. 돌이켜보니 나는 남편을 위해서 해 준 것이 별로 없는 여자같아서 죄책감이 든다. 어쩌다 싸우면 늘 먼저 손 내밀어 주었고, 설령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크게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진정한 보살이 우리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따라 남편의 자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나같이 천방지축 제 멋대로인 여자랑 살아주는 게 고마우면서 딱하기도 하고. 내일 아침에는 조금 더 밝은 모습으로 남편의 하루를 열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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