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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CAEL Jan 31. 2023

눈 뜨고 지갑 털린 친구

포르투갈에서의 소매치기 Part 2

맥도날드에서 눈 뜨고 폰 털린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소매치기를 당했다.

이번엔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 함께 있던 친구였는데, 내가 철저히 농락을 당했기 때문에 폰을 털렸을 때 보다 훨씬 더 분노가 차올랐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리스본엔 Martin Moniz라는 동네가 있다. 리스본에서 제일 큰 아시아 식재료 마트(대부분 중국인들이 운영하고 중국 상품이 대부분)가 있고, 주변에 불법 중국 식당들이 많으며, 치안이 조금 불안한 그런 동네로 알려져 있다. 

그날은 외국인 친구와 함께 그  동네에서 저녁을 먹고 Padaria portuguesa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파리바게트와 같은 포르투갈 로컬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왜냐하면 여기 Padaria portuguesa 지하가 널찍하니 좋다). 

열심히 할 일을 하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시간이 늦었고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 했기에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몰랐지만 카페 밖으로 나오니 보슬비가 조금 내리는 축축한 날씨였다. 우산은 없었기에 빨리 역으로 가자고 친구를 재촉해 바삐 걸었다.

카페를 나와 3분쯤 걸었나??

갑자기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우리 뒤엔 한 외국인 남자가 아무 것도 안했다는 듯 양 손을 들고 서 있었고, 내 친구는 다급하게 크로스백 안을 헤집었다. 지퍼는 이미 열린 상태였다.


-너 내 지갑 어쨌어!! 빨리 내놔!!! 

가방 속 지갑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챈 친구는 놀라고 화가 나서 그 남자를 다그쳤고, 그 남자는 당황한 듯 진정하라며 자신의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아냐!! 내가 안 훔쳤어!! 어떤 사람이 너 가방을 몰래 열고 지갑을 빼서 달아났단 말이야!! 저기로 뛰어갔어!!

하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어느 골목길을 가리켰다.


-닥치고 빨리 내놔 이 도둑놈아!!

이성을 잃고 소리치는 친구를 진정시키며 난 일단 그 남자에게 물었다.


-어디로 갔어?? 급하니깐 빨리 안내해!!

그 당시 내 머릿속은 온통 어찌 됐건 지갑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고, 남자 말대로 정말 누군가가 지갑을 빼서 도망갔다면 한시라도 빨리 뒤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얘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거야!!! 얘가 훔친 게 맞아!!

친구는 계속 소리쳤고,

-지금 안 쫓아가면 늦어!! 내가 알려줄게!!

내가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남자가 자꾸 보챘다.


난 일단 남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만약 남자가 거짓말을 했다면 그때 가서 잡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신이 없는 친구를 잠시 있게 하고 그 남자한테 빨리 앞장서라고 했다. 심장이 마구 뛰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그 남자가 범인이 사라졌다고 날 끌고 간 곳은 그 동네에서 계단이 많기로 악명 높은 장소였고, 나한테 보이지도 않는 앞을 가리키며 저기 범인이 뛰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며 빨리 가자고 했다. 

남자가 성큼성큼 뛰어서 올라가는 뒤를 쫓으며,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고 참았다. 

뛰어올라가며 남자의 국적을 물으니 자기는 포르투갈인이랜다. 복장은 여느 포르투갈인들처럼 후줄근한 패션에 얼핏 보면 여행자 같기도 하고, 옆에서 힘들어하는 날 보면서 빨리 가면 잡을 수 있다고 부축하고 속도를 맞춰주는 걸 보며 마음속 의심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너무나도 멍청한 말을 하고야 말았다.

-도와줘서 고마워 (내가 미쳤지.. 지금까지 생각만 하면 분노 게이지가 차오른다.)

-천만에!!


그렇게 열심히 뛰어올라가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내리막길을 내달렸고, 두 갈래 길이 나왔다.

그 남자 왈

-넌 왼쪽으로 가고, 난 오른쪽으로 갈게!! 어차피 이 길은 저기 끝에서 만나니깐 서로 길을 훑고 거기서 보자!!

하고 오른쪽 길로 사라졌다. 


나도 왼쪽 길로 내달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건 그 남자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택한 길에서 한 동양인 커플이 걸어오고 있었다. 무작정 그들을 붙잡고 영어로 이 길로 뛰어간 어느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둘을 한국어로 속삭였고, 같은 국적의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보단 빨리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한국말로 사정을 설명하고 급하게 다시 물었다.

그 커플은 이 길로 계속 걸어왔었는데 중간에 사람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소지품 잘 보관하라는 주의를 흩뿌리듯 던지고 재빨리 그 남자가 사라진 길로 추격했다.

양갈래 길이 그 끝에서 만난다는 말과 달리 오른쪽 길은 다시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눠져 있었고, 그때서야 난 철저하게 속았음을 알았다...


그때 느꼈던 그 분노와 좌절감과 괘씸함은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그 남자가 범인인 것 같다던 친구의 말을 뒤로하고 급한 마음에 내달린 것과 상황의 급박함에 이성을 잃어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한 점, 불과 1~2분 전까지 옆에 두고도 못 알아본 것, 무엇보다 내가 그런 얄팍한 연기에 속았다는 것과 그걸로도 모자라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한 것이 너무나도 분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친구와 함께 다시 경찰서를 방문했다. 진술을 하는 친구 옆에서 분에 못 이겨 책상을 탕탕 두드렸더니 경찰관이 주의를 줬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난 그 속에서 누가 봐도 사연 있는 처량한 모습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항상 사건이 지나고 나면, 그 결과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나의 부주의함에 스스로를 탓하고 비난하게 되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간 경찰서 방문이 모두 포르투갈에서 일어났고, 이후에 난 경계심이 살아나 어딜 가든 지 사람들을 사주경계하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걸어갈 때면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돌아다녔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사건 이후부터 귀국할 때까지 소매치기를 또 당하진 않았다. 

2번의 소매치기 경험으로 난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후배들이나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소매치기를 주의하라고 주입하곤 했다.


참, 결국 그 친구는 지갑에 있던 모든 카드를 그날 바로 일시정지했고, 이후에 몇 번 정지된 카드를 긁었다는 문자를 받았을 뿐 지갑은 결국 찾지 못했다. 우린 범인이 지갑 안의 카드와 현금만 꺼내고 지갑은 버렸으리라고 추정했다.


교환학생을 하러 포르투갈을 재방문했을 땐 고가의 카메라를 도둑맞은(그것도 신발가게에서!!) 친한 형과 함께 비질란테를 구성해서 소매치기 놈들을 잡으러 다니자고 했는데, 아쉽게도(?) 한 놈도 걸리지 않았다.


카페에서도 노트북이든 휴대폰이든 책상 위에 놓고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우리나라의 치안이 새삼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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