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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CAEL Jan 30. 2023

눈 뜨고 폰 털린 나란 사람..

포르투갈에서 당한 첫 소매치기

Welcome to Portugal!!


왓??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저 말이 진정 분노에 떨며 털린 물건을 신고하러 왔다가 경찰서에서 들을 법한 말인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저 말을 한 경찰관의 표정과 말투가 잊히지 않는다.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난 2016년 말에 제대를 했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제대선물로 당시 최신 폰이었던 갤럭시 3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2017년 여름에 포르투갈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리스본에 자리를 잡아 행복한 추억들을 쌓아가고 있었다. 아마 그전까지 내 생애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난 종종 맥도날드에서 시원한 쉐이크를 먹으며 공부를 하곤 했고 그날 역시 저녁에 시내에 있는 맥도날드의 사람이 뜨문뜨문 있는 2층 구석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한참 자판을 뚱땅거리고 있는데 내 시야로 계단을 올라오는 누추한 차림의 노숙자 한 사람('놈'이라 말하고 싶다)이 들어왔다. 그런 사람들은 거리에서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구석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씩 다가왔다.

그리곤 내 테이블 옆에 섰다. 그를 쳐다보는 내 앞에 A4 종이 하나를 불쑥 들이밀더니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내 눈길은 무엇인가 휘갈겨진 종이로 향했고 문장을 읽기 위해 집중하게 됐다. 

이때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30초가량 지났을까. 종이에 쓰인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그냥 낙서였고, 난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내 할 일에 집중했다. 그 당시엔 뭔가 허전한 걸 바로 느끼지 못했다. 내가 물건을 털릴 것이라고는 그전까지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노숙자가 돌아가고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해가 진 후 어두컴컴해진 밖을 바라보며 집에 가기 위해 가방을 싸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뭔가 있어야 할 중요한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 폰이었다. 그때 당시 아직 할부도 끝나지 않은 내 폰이었다. 

집주소, 일정 등 수많은 중요한 메모들과 연락처, 무엇보다 그때까지 엄청나게 찍었던 내 소중한 사진(이라 쓰고 '추억'이라고 읽는)들이 쌓여있는 내 폰이었다.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치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의자 밑도 확인하고 주변 테이블과 의자, 내 가방 밑바닥까지 다 확인했다.

없었다. 내 영롱한 로열블루 색깔의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 보니 수상한 노숙자의 접근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전까지는 한국에서의 습관처럼 내 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노트북을 하고 있던 게 기억이 났다. 

노숙자는 낙서가 휘갈겨진 종이로 내 시선을 돌리면서 테이블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폰을 낚아채 간 것이다. 그가 돌아가고 폰을 쓸 일이 없어서 내가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너무 화가 났다. 

폰 자체를 털린 것보다 그 안에 있는 내 데이터들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잃어버린 것이 너무 아깝고 분했다. 그리고 노숙자의 그런 얄팍한 전략에 속아 넘어간 스스로가 너무 화가 났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고자 근처의 경찰서로 향했다. 

내 순서를 기다리는데 뒤이어 어느 외국인 노부부가 들어왔다. 물어보니 현금, 여권 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았다고 한다. 참 스펙터클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내 순서가 왔고, 손질발짓을 해가며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맥도날드에는 CCTV도 있었고, 노숙자의 얼굴도 찍혔을 거라 생각하여 그걸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 진술을 문서로 옮기던 경찰관이 그 대목에서 잠시 다른 경찰관을 불러 CCTV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동료 경찰관이 나를 자리로 불러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어느 의류 상점 내부를 녹화한 영상인데, 90년대에서나 사용했을 법한 카메라 화질에 사람들 얼굴은 식별할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봤지?? 맥도날드에 있는 CCTV도 이래'

영상을 보여준 경찰관이 말했다.

안타깝지만 CCTV영상을 확보해도 범인 검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옆에 있던 경찰관의 한마디.

'WELCOME TO PORTUGAL'


리스본에서 이런 소매치기는 아주 흔한 경우이니 아깝지만 폰을 찾는 건 포기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본인들을 최선을 다하겠단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조금 멍해진 나는 진술을 마치고 경찰관이 뽑아준 물품분실증명서를 가지고 터덜터덜 경찰서를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포르투갈이란 나라가 너무 싫었고, 무책임한 경찰들이 미웠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자꾸만 맥날에서 있었던 일이 되새김되며 '그때 폰을 테이블 위에 두지 말걸..', '노숙자를 경계 좀 할걸...' 하면서 스스로를 탓하게 되었다. 


그날이 지나고 리스본 곳곳에 있는 분실물 센터에 전화도 해보고 경찰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소득은 없었고, 난 결국 며칠 후 블랙프라이데이 때 세일하는 아이폰 SE를 구매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데이터는 아쉽지만 잊어버린 채 살기로 했다.


맥날에서의 소매치기 이후 난 어딜 가든 내 물건을 테이블 위에 절대로 올려놓지 않았고, 어딜 가나 내 가방과 소지품을 챙겼다. 


느슨하던 유학생활에 긴장감을 준 사건이었고, 지금도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쇼킹한 기억이기도 하다. 


역시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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