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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CAEL Jan 19. 2023

#1 개성과 문화의 콜라주 = 아줄레주

포르투갈의 문화적 상징인 아줄레주에 대하여

1) 집스타그램 해시태그 콘텐츠 (출처: 인스타그램)                          2) 나 혼자 산다 "나래바" 인테리어 (출처: 네이버 이미지)


#집스타그램 #홈스타그램 #집 꾸미기...


 인스타그램에 대표적으로 "집스타그램"이라는 단어를 해시태그로 해서 검색만 해도 390만 건에 해당하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대부분은 집의 내부를 예쁘게 꾸며놓은 사진들이다. 집값이 계속 상승하고 새집 마련의 꿈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만 같은 시점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를 나의 취향에 맞게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MBC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선 연예인 박나래가 자신의 집을 마치 바(Bar)처럼 꾸며 사람들을 초대해서 즐기는 모습이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또한 한 때 '쿡방'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를 하는 주방 인테리어가 크게 주목을 받았으며,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언택트 문화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으로 자택근무, 자택학습의 경향이 증가하면서 집은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사무실, 공부방, 여가생활 장소로써 다양한 기능성을 요구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이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변화하면서 주거공간의 인테리어 역시 이를 반영하기 위해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요즘엔 1인 가구의 증가와 저렴한 가격의 가구들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인테리어 장식과 리모델링이 각광받고 있다.


 나 역시 소품들로 집 안을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최근에 궁금한 마음에 가구와 인테리어 테마파크인 한샘 플래그샵을 방문했다가 삶의 질을 높여주는 다양한 가구들과 예쁘게 꾸며진 모델 하우스를 보고 내 집 마련과 함께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로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개성을 담은 자신만의 집을 꾸미기 위한 하나의 아이템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이는 바로 아줄레주(Azulejo)이다.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이 아줄레주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아줄레주가 뭐주??


3) 아줄레주 모양 (출처: 구글 이미지)


 아줄레주는 그 이름에서 얼핏 느껴지듯이 아랍어의 영향을 받았다. 과거 아랍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을 때 건너온 타일공예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아랍어 Azulej에서 파생된 단어로 "작고 반짝거리는 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림 3)와 같이 정말 다양한 문양의 아줄레주가 존재하는데, 기본적으로 아줄레주는 그림을 그려낸 정방형의 작은 타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것을 이용한 작품을 뜻하기도 한다.


4) 아랍어로 장식된 아줄레주                                     5) 기하학적 문양의 돌로 구성된 아줄레주 (구글 이미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줄레주는 아랍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탄생한 이 타일공예는 이슬람문화의 종교적 교리가 반영되어 있다.

 이슬람교는 어떠한 형을 가진 아이콘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예술에서 또한 특정 형상을 가진 아이콘을 대입하는 대신 아랍문자 등을 이용해 장식을 했다. 아줄레주는 이러한 종교적 교리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하게 되었는데, 작은 돌들을 기하학적 모양으로 배열해서 개별적으로 보면 기이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모아놓고 봤을 때 하나의 시각적인 장식 기능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줄레주의 역사


 아줄레주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렇다면 이젠 아줄레주가 어떻게 포르투갈에서 고유한 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 역사를 조금 살펴보도록 하겠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줄레주는 이슬람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8세기 초, 712년에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를 지나 포르투갈의 남부 알가르브(Algarve) 지역으로 침입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들어오게 된 이슬람 문물 속에 끼어서 이베리아 반도로 함께 전파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아줄레주가 포르투갈 전체로 퍼지게 된 것은 아니다. 712년부터 1249년, 스페인&포르투갈 왕국의 국토수복전쟁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랍인들을 완전히 축출하기 전까지 아랍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하며 그들의 문화를 곳곳에 남겨놨는데, 대표적으로 포르투갈어 단어인 Açucar(아쑤까르, 설탕), Laranja(라랑자, 오렌지) 등의 언어적 측면에서도 쉽게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줄레주도 그들의 흔적 중에 하나로 초반 아줄레주는 이베리아 반도에 생산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아랍국가들에서 전량 수입에 의존하여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를 장식하는 용도로 조금씩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2세기에 아랍 장인들이 스페인에 생산공장을 설립하여 자체적으로 생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세비야를 중심으로 말라가, 발렌시아 지역에도 공장이 설립되며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이베리아 반도 내 독자적인 아줄레주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6) 세비야 궁 내부 벽에 장식되어 있던 아줄레주 (출처: Comunidade, Cultura e Arte)


 그렇게 생산된 아줄레주가 포르투갈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는 1498년, 동 마누엘 1세 (D.Manuel I )가 스페인의 사라고사, 톨레도, 세비야 지역을 방문하여 그 지역 왕궁의 내부를 장식한 이슬람식 아줄레주를 본 뒤, 자신이 거주할 궁도 아줄레주로 장식하고 싶다고 하여 포르투갈로 도입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렇게 재건축된 궁이 바로 리스본 근교 도시 신트라(Sintra)에 있는 신트라 궁(Palácio nacional de Sintra)이며, 이때 들여온 아줄레주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조각은 1503년에 생산된 것이라고 하니 5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줄레주가 왕가에서 시작해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문화적으로 포르투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5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어떠한 양상으로 아줄레주가 변화되어 왔는지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7) 신트라궁                         8) 신트라궁 내부 벽의 아줄레주 장식(출처: 구글 이미지)


9) 신트라궁 Sala dos Árabes(아랍인들의 방)                    10) 알함브라 궁전의 Hall of Ambassadors (출처: 구글 이미지)


 그렇게 스페인 세비야 지역에서 아줄레주를 들여와 신트라궁을 건축하고 이후 대대적으로 아줄레주가 포르투갈의 내부에 장식적 요소로 자리하게 된다. 16세기 이전까지의 아줄레주는 아주 전통적인 제작기법으로 생산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로 단색의 타일을 기하학적으로 조합한 것이거나, 투박한 그림을 새겨 넣는 단순한 타일들이 많이 생산되었다. 그래서 그림 8)와 같이 하나의 문양을 그린 타일로 한쪽 면을 덮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해당 문양은 하늘을 관측하는 혼천의인데 당시 포르투갈이 막 브라질을 발견하며 대항해 시대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 시기의 타일장식으로써 아줄레주는 도배를 하듯 하나의 공간을 가득 메우는 형태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마치 빈 공간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러한 양상은 이후 포르투갈 아줄레주 장식의 기본 모델이 되어 제작기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20세기까지 꾸준히 답습되었다.


 포르투갈에서 아줄레주가 장식물로써 처음 사용되었던 신트라궁은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아랍인들의 방"을 들 수가 있는데, 아줄레주를 수입해 온 스페인의 한 궁전인 알함브라 궁전의 "외교관들의 방"과 비교를 했을 때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기하학적 패턴이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포르투갈의 경우 문이 아줄레주를 두른 것과 같은, 그래서 문을 강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장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마치 블록을 쌓은 것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주는 패턴은 다른 국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포르투갈만의 특징이다.

 또한 포르투갈의 아줄레주는 시대적 미술 양식의 영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는데, 그림 9)의 경우에도 문위를 장식하는 형태가 수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후기 고딕 양식의 특징으로서 전기 또는 전성기 때의 고딕 양식처럼 높은 첨탑의 요소를 반영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수평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후기 고딕양식의 형태이다.


 이후 16세기엔 아줄레주의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난다. 바로 Majorca(Majólica, 마조르카) 방식의 등장이다. 기존엔 기하학적인 문양과 단순한 모양을 기입했다면 마조르카 방식을 통한 제작으로 타일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마치 큰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어서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와 같은 다양한 모티브를 담은 아줄레주를 제작할 수 있었다. 이 기법은 15세기말에 이탈리아 공예가인 프란시스쿠 니쿨로주(Francisco Niculoso)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에 소개되었고, 16세기 후반부에 들어서며 자체적인 아줄레주 생산력을 갖추게 된 포르투갈은 이 기법을 이용해 자주적인 아줄레주를 제작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미술양식인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영향을 반영하였다.


11), 12)  리스본 São Roque(성 호크) 교회 아줄레주


 이 시기의 회화적인 특징을 보다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리스본에 위치한 São Roque 교회 내의 흑사병 환자를 치유하는 성인의 모습을 담은 아줄레주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노란색, 푸른색 등 밝은 색상이 중심이 되어 배경이 형성되고, 중간에 둥근 공간을 만들어 이 안에도 그림을 그려넣음으로써 마치 메달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두드러진 부분이 아니지만 직접 자세히 보면 나무 덩굴 위에서 천사가 태어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형태를 확인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적인 모양들이 나타나고 있는 데 이는 당시의 바로크와 매너리스트(Mannerist)적인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당시 새로운 대륙의 발견과 항해술의 발달로 대서양을 지배하던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엿볼 수 있는 진귀한 동식물들이 주변적인 요소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공예가로는 Marçal de Matos(마르쌀 드 마투스) 등이 있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반까지는 체크무늬의 타일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타일이 그 자체로는 가격이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배열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이에 따른 경비가 증가함으로써 점차 사라지고 정형화된 타일들이 생산되게 된다. 이렇게 정형화된 타일은 과거에 매우 화려한 여러 가지 색깔을 사용하던 것에서 청색, 백색, 노란색이 메인을 이루는 구성으로 스타일이 변화했으며 회화적인 측면에서도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3) 산타 테레사(Santa Teresa) 수녀원 제단 (출처: 구글 이미지)


 바로 꽃과 새를 주된 회화의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인데, 그림 13)는 리스본에 위치한 산타 테레사 수녀원의 제단을 나타낸 사진인데 바로 그러한 회화기법의 대표적인 예이다. 주목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새의 경우 대부분 공작을 특정 지어 그렸다는 점이다. 

 공작은 동양적인 사고에서 십장생의 하나로 강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의 공작을 서양신화에서 영생, 생명력을 상징하는 꽃과 함께 위치시켜 놓은 것은 동양적 사고가 어느 정도 서양에 전파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제단 속 그림 왼쪽 하단에 코끼리와 같은 희귀 동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포르투갈이 인도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색깔과 회화적인 측면에서 표준화된 작업은 아줄레주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생산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포르투갈의 모든 건물에서 아줄레주가 대량으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17세기를 지나 18세기로 들어서면서 포르투갈의 아줄레주 공예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며 동시에 쇠퇴하는 계기가 발생하게 된다. 먼저, 18세기로 들어오며 아줄레주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며 그 예술성도 높아지게 되어 표현의 대상 또한 종교, 신화, 일상생활 등 매우 다양해지고 풍부한 모티브를 사용하게 된다.


14) 18세기 네덜란드 아줄레주        15) 18세기에 지어진 포르투의 까르무 성당 (출처: 구글 이미지)


 이 시기 이미 포르투갈은 꾸준히 아줄레주를 생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로부터 상당한 양의 아주레주를 수입하고 있었다. 바로 네덜란드의 청색 타일의 높은 예술성 때문인데, 그 색과 예술성에 반해 자국의 아줄레주에도 이러한 특징을 대입하며 아줄레주를 제작하는 화공들에게도 청색으로 채색하는 방법 등을 교육하는 등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실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결국 포르투갈 아줄레주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1715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산 아줄레주를 수입하지 않고 독자적인 청색 아줄레주를 만들어내게 된다. 또한 한편으로는 프랑스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아 18세기 중반엔 아줄레주 생산 초기에 쓰였던 초기의 노랑, 초록, 보라색 등의 색상을 사용하여, 정원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는 목가적인 포르투갈인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 아줄레주를 생산하기도 했다.



16) 낄루즈(Queluz) 궁 정원에 있는 아줄레주(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아줄레주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의 역사가 뒤바뀌게 된다. 바로 1755년에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 때문이다. 수도 리스본의 약 90% 이상의 인적, 재산적 피해를 발생시킨 이 막대한 지진피해로 인해 대서양을 지배하며 세계 속에서 군림하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 버렸고, 이를 재빨리 복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때 혜성과 같이 등장한 마르끼스 드 폼발(Marques de Pombal) 백작의 지휘아래 체계적으로 복구과정이 진행되면서 리스본은 지금처럼 구획이 수평과 수직으로 나누어진 행정구역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리스본을 방문하시면 마치 자로 그려놓은 듯 오와 열을 맞춰 거리를 사이에 두고 정렬되어 있는 모습을 보실 수가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 대지진 이후 갖추게 된 리스본의 모습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러한 복구과정 속에서 타일이 가지고 있는 기능성과 위생적인 면, 그리고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 등의 특징으로 빠르게 타일을 조달해야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예술성보다는 실용성을 따진 아줄레주가 생산되었다.


17), 18) 네오클래식 아줄레주 스타일 (출처: 구글 이미지)


 그래서 위의 사진과 같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간단한 문양과 패턴이 그려진 아줄레주가 복구된 건물들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스타일은 "네오클래식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기법을 탄생시킨 원초를 제공한 폼발 백작의 이름을 따서 "폼발식 아줄레주(Azulejo Pombalino)"라고 부르기도 한다.


19), 20) 브라질 성 루이스(São Luís) 도시의 아줄레주


 18세기를 지나 19세기 포르투갈 아줄레주의 특징은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브라질 북부지방인 마라냐웅(Maranhão) 주의 주도, 성 루이스(São Luís)에서 사용된 아줄레주를 꼽을 수 있다. 성 루이스는 "아줄레주의 도시"로 인정받아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 지역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기 전에 이미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 유럽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고 아줄레주도 쓰이고 있었다. 특히 브라질의 기후적 특성에 맞춰, 강한 방수력으로 비를 막아주고 더위를 튕겨내 시원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아줄레주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주된 특징은 바로 그림 19),20)에서 보실 수 있듯, 건물 외벽의 앞면, 문을 중심으로 전체 외관을 일관된 무늬로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은 1807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입을 받아 브라질로 왕가가 피난을 떠났던 사건이 있었다. 그때 이러한 브라질 아줄레주의 특징을 발견하고 1821년 동 주앙 4세가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오면서 그러한 스타일을 본떠 포르투갈에 새로운 아줄레주가 유행하게 된다.



21), 22) 19세기 리스본 건물을 장식한 아줄레주 (출처: 구글 이미지)


 바로 위의 그림들과 같은 스타일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새기기도 하고 낭만주의를 반영하여 예술적인 가치가 높은 아줄레주를 생산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리고 20세기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의 역사를 기록하는 귀중한 자료이자, 국민들의 애환을 담은 민중의 동반자이면서, 포르투갈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적 산물로써 자리하고 있다.

 특히 20세기에는 하파엘 핀헤이루(Rafael Bordalo Pinheiro), 조르지 바하다스(Jorge Barradas)와 같이 다채로운 아줄레주를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거장들이 많이 배출된 시기이며 마리아 케일(Maria Keil)이 1957년 처음으로 리스본 도심의 지하철 역사 내 자신의 아줄레주 작품을 전시하던 것이 이젠 지하철 역사 내마다 다른 테마별로 장식된 아줄레주가 리스본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장소인 지하철 역사가 알록달록하고 개성 있는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심신이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전달하는 것 같다.


23),24),25),26) 리스본 지하철 역사 내 각기 다른 아줄레주


 위의 사진들은 리스본에 있을 때 직접 역사들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이다. 한때 아줄레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아름다운 아줄레주를 발견하면 사진부터 찍어놓곤 했다. 그중에서 지하철 역사 내에 있는 아줄레주들은 현대의 모던함과 과거의 전통을 가장 잘 융합했다는 의미에서 제일 감명이 깊었다. 그래서 하루 날 잡고 지하철 여행을 하며 지하철 역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사진으로 남겼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공간조차 자신의 예술성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변화시킨 예술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아줄레주를 제작한 화가들의 사인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소소한 재미이다. 리스본에 오시게 된다면 택시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지하철마다 다른 전시관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이색적인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줄레주의 다양한 쓰임



아줄레주의 다양한 쓰임 (출처: 구글 이미지)


 아줄레주는 건물의 외벽을 장식하는 기능 이외에도 그 쓰임이 매우 다양하다. 상점이나 레스토랑은 예로부터 아줄레주에 판매하는 상품을 그려 넣거나 이름을 적어 홍보하거나 가게의 특성을 반영하였다. 그러한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져 아줄레주에 식당 이름이나 상점 로고를 그려 넣어 건물외부에 부착시켜서 장식적 기능과 실용적 기능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거리에서도 쉽게 아줄레주를 발견할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도로명을 플라스틱이나 목재판에 적어서 내거는 경우가 많지만, 포르투갈의 경우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아줄레주에 도로명을 기입하여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아줄레주는 내부 인테리어 장식으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그 특유의 색감 및 문양의 조화와 시공이 간편하다는 장점은 나만의 공간을 커스텀하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로소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삶 속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하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아줄레주의 다양한 쓰임 (출처: 구글 이미지)
아줄레주의 다양한 쓰임 (출처: 구글 이미지)


 인테리어 용도 외에도 아줄레주는 액세서리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귀걸이, 팔찌와 같은 여성용 액세서리부터 남성용 시계장식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포르투갈 기념품 상점에 가면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기념품이 바로 아줄레주 자석인데, 포르투갈의 각 도시는 도시의 특징이나 이름을 넣은 아줄레주 자석을 판매하고 있다. 여행을 기념하고 추억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포르투갈에서 방문하는 여행지만의 특별한 아줄레주 자석을 모아보는 것도 좋은 기념품이 될 것이다.


28), 29) 아줄레주 문양을 모티브로 한 의류


 아줄레주는 그 특유의 문양 때문에 디자인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 모티브를 주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분야는 패션이다. 2014년부터 아줄레주에서 얻은 영감을 패션으로 승화시킨 Tiled라는 브랜드는 포르투갈 현지 브랜드로서 "건물을 사람에게 입히다(Despir os prédios e vestir pessoas)"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포르투갈 전역에 퍼져있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줄레주 패턴을 의류와 접목시켜 옷을 만들고 있다. 그 밖에 가방, 신발 등 다양한 아이템과 아줄레주의 콜라보 상품을 찾아볼 수 있다.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문화 요소 중 커피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화이다. 그 은은한 청색과 백색, 청록색의 조화가 우리나라 도자기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포르투갈을 방문하면 기념품으로 가장 많이 사가시는 것 중에 하나도 역시 아줄레주 조각인 만큼 한국인들의 취향에도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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