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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하루의 짧은 소풍

by 우슬초



우리에게 와주었던 동물가족 중에 고양이 하루 이야기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하루는 아메리칸 숏헤어, 여동생이 힘찬이의 동생으로 입양한 고양이다.

고양이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편견을 단박에 깨버렸을 정도로 하루는 똘망똘망하고 귀여웠으며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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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일. 나의 외장하드에 남아있는 하루의 가장 오래된 사진이자 첫 번째 사진에 찍혀있는 날짜다.

그러니까 하루는 2013년 7월의 첫째 날에 동생네 둘째로 입양되었다.

작고 앙증맞던 하루는 사내아이였고, 그래서인지 굉장히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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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고양이 하루는 장난감을 무척 좋아했다. 하루를 위해 문고리에 달아둔 장난감을 두 발로 서서 앞발로 신나게 복싱하듯 쳐댔고, 버들강아지를 닮은 꼬치 장난감이나 낚싯대 장난감으로 유인하면 백발백중 낚여서 숨을 헥헥 몰아쉴 때까지 이리저리 뛰어다니곤 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답게 서재로 들어가 책장 높은 곳까지 등산하기도 했고, 갑자기 아래로 뛰어내려서 우리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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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내가 글 작업할 때 읽던 논문 자료들과 책들이 쌓여있는 책상으로 올라가 단잠에 빠지기도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자주 낮잠을 즐겼던 걸 보면, 하루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했던 공간은 이 책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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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텔레비전을 볼 줄 아는 고양이었다. 미르는 텔레비전에 통 관심이 없었다. 내가 늘 TV를 꺼놓고 지냈기 때문에 미르도 텔레비전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움직이는 영상에 흥미를 갖지 못한 것 같다.

여동생은 나보다 TV를 자주 보는 편이었다. 특히 그녀는 SBS에서 방영한 'TV동물농장'의 팬이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그 프로그램을 시청했고, 힘찬이와 하루는 우백호 좌청룡처럼 그녀의 옆을 지키고 앉아 동물 친구들의 모습을 함께 즐겨보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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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애교가 많았고, 강아지 형아들을 좋아했다. 배를 보이고 발라당 누워 자기 좀 예뻐해 달라고, 같이 놀자고 장난을 쳤다. 점잖고 착한 힘찬이는 고양이 동생의 응석과 장난을 모두 받아주었다. 미르가 아깽이 윙크와 잘 지냈던 것처럼 힘찬이와 하루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미르도 하루에게 거의 짜증을 내지 않았다. 하루가 놀러 와서 온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녀도 화를 내거나 이빨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표정 상으로는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 넌 아기니까. 내가 참아준다'는 눈빛으로 하루를 조용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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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이와 미르, 그리고 하루. 세 아이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평화롭고 즐거웠던 시간들.

이때는 미르의 컨디션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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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냥이에 대한 로망이 있던 동생은 하루를 대동하고 근처 유원지로 소풍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는 산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천방지축 뛰어놀던 하루는 땅에 배가 닿을 정도로 몸을 낮추고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영역의 동물이라더니 낯선 곳이라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동생은 산책냥이에 대한 로망을 첫 번째 소풍 이후로 완전히 접었다. 하루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추석을 맞아 본가를 다녀와야 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하루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 하루만 혼자 집에 둘 수 없어서였다. 미르와 힘찬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닐 때면 늘 휴게소에 들렀는데, 이유는 녀석들의 생리현상 때문이었다. 하루의 마지막 여행이 되어버린 그해 가을의 추석 나들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행 덕분에 자연을 배경으로 셋이 나란히 앉아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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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고양이의 중성화수술은 6개월령이 되었을 때 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고, 동생도 그 시기에 맞춰 하루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하루가 수술을 받은 곳은 우리 집 근처, 미르가 다니던 동물병원이었다. 그곳 원장님이 워낙 친절하셨고, 동물들을 좋아하셨으며, 과잉진료도 없는 편인 데다, 힘찬이가 다니던 병원에서 잡지 못하던 귓병과 피부병이 그분 덕분에 호전되었던지라 원장님에 대한 신뢰도가 큰 편이었다.


그런데 백신접종도 거뜬히 이겨냈고, 수술 전 검사에서도 이상소견이 없었던 하루가, 중성화수술을 받았던 그날 저녁에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열이 올랐다. 그리고 한 달 여만에 하루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루의 병명은 복막염이었다.

중성화수술 부작용으로 복막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신약이 나와서 희망이 생겼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치료제나 시술법조차도 없어서 고양이 복막염은 치사율이 백 퍼센트에 가까울 정로도 불치병에 속했다.


동생은 하루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수술을 맡았던 원장님도 그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루를 진료해 주셨다고 믿는다.

그 노력이 무색하게 하루의 병색은 빠르게 짙어져 갔다. 폐에 물이 찼고, 그 물을 빼주어도 다시금 물이 찼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가 느끼는 통증의 강도가 심해져 갔다.


하루는 급속도로 야위어갔고, 기운을 차리지 못했으며,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치사율 백퍼센트라는 건 생존 확률이 0퍼센트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달리 표현하자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귀엽고 깨발랄하던 하루는 동굴집에 숨듯이 누워 겨우겨우 숨을 내쉬었다.


제발 이 고통에서 나를 구해주세요...


하루는 모든 것을 포기한 눈빛이었다. 어떻게든 하루를 살려보려고 사력을 다해 애쓰던 동생이 힘든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하루를 잡고 있는 것이 하루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동생의 고통과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을 테고, 수없이 갈등했을 것이다.

동생은 하루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평안 속에서 지내기를 바랐을 것이다.

회복 가능성이 제로인 상태에서 너무 많이 아파하는 하루를 보며 나 또한 동생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


병원으로 가기 전, 동생은 하루를 안고 집안 곳곳을 마지막으로 보여줬다. 하루가 좋아했던 캣타워, 창밖이 보이는 베란다, 힘찬이 형과 자주 앉아있던 소파,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 병마와 싸우는 동안 은신처가 되어주었던 작은 방까지... 추억이 배어있는 공간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힘찬이 형과 미르 형아와도 작별인사를 나눈 뒤 하루는 병원으로 향했다.


하루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워낙 많이 아파서이기도 했겠지만,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했다.


그러나 우리는 고요하지 못했다.

기다리고 있던 원장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하루를 정중하게 진료 테이블에 눕히자 우리는 하루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원장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눈물을 흘리며 하루를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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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일, 우리에게 왔던 하루는 2013년 12월 21일, 제일 좋아했던 이모표 간식을 품에 안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너무도 예쁜 모습으로...

이제 더 이상 하루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하루는 착한 아이였으니까 무지개다리 건너 천국에 가서 편안하게 지낼 거라고 믿으면서도 우리는 울고 또 울었다.

하루를 위한 선택이었음을 알면서도 하루의 죽음은 내게 충격으로 남았다.

내가 이럴진대 동생의 슬픔과 아픔은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하루가 앓는 동안 동생의 몰골도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뭐든 먹여야 할 것 같아서 그녀가 좋아하는 곳으로 데려갔지만 그녀는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거리와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고, 가는 곳마다 캐럴이 울려 퍼졌다.

이 와중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겠지...


"참 마음이 복잡하다....."


내가 침울하게 말하자 동생이 퀭한 얼굴로 말했다.


"로드킬로 죽는 애들도 있잖아. 그런 애들에 비하면 우리 하루는 행복한 고양이였다고 생각해. 하루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잖아...."


동생의 말마따나 그날 그곳에 있던 모두가 하루의 죽음을 슬퍼하며 몹시 울었더랬다. 나와 동생은 그럴 수 있다지만 원장님과 간호사 선생님까지 그렇게 울 거라고는 사실 예상하지 못했었다. 예의상 우는 게 아니라 그분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눈물이었다. 동생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동생의 인생행로를 크게 바꿔놓았다.


여동생이 믿는 종교는 불교였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절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나이가 더 들면 공양주보살이 되어 절에서 지내고 싶다고도 말했다.

결혼은 당연히 그녀의 안중에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하루의 죽음을 겪고 나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루가 떠날 때 그 아이를 사랑했던 우리가 곁을 지키며 눈물로 애도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고 싶어졌다고 했다. 누가 나를 위해 그렇게 울어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가족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와닿았다는 거였다.


하루 덕분에 바뀐 생각 때문일까?

하루가 떠난 다음 해 여름인 2014년 8월, 여동생은 결혼식을 올렸다.

2014년 2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날 장례식에 참석했던 남동생의 동창이 자신의 상사와의 소개팅을 주선했던 건데,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여동생이 오빠 친구의 상사를 만나보겠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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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린이는 스코티시폴더였고, 공주처럼 도도한 매력을 가진 암컷 고양이었다. 씨스타의 팬이었던 제부는 멤버 중에서 효린이를 제일 좋아했고, 반려묘의 이름도 효린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제부는 알면 알수록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착했다. 제부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 첫 만남을 가졌으니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효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효린이 덕분에 힘찬이도 아빠가 생기게 되었다. 미르 역시 이모부가 생긴 셈이니 효린이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만남이 애초에 가능하게 한 존재는 하루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루가 여동생에게 와주지 않았다면, 하루가 그렇게 떠나지 않았다면, 여동생은 가정을 꾸릴 생각조차 안 했을 테고, 결혼 또한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부와 부부인연을 맺는 대신 어느 절의 공양간에서 열심히 사찰음식을 만들고 있지는 않았을는지.... 그러니 새로운 가족의 탄생에 가장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고양이 하루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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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본 고양이 중에 제일 잘생기고 멋졌던 우리 하루...

힘찬이 형아와 미르 형아도 그곳으로 떠났으니 셋이 만나 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생명도 의미 없이 왔다 가지 않는다고 여기는 편이다.

이 지구별에 살러 올 때 각자에게 맡은 역할을 가지고 도착한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비록 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하루는 우리에게 큰 깨달음과 행복과 추억을 남겨주고 떠났다.

하루의 짧은 소풍이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로 남아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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