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변과 구토가 멈추지 않는 미르를 데리고 수의사께서 급하게 로비 안쪽의 검사실로 들어갔다. 혈액검사를 우선 진행하겠다고 내게 말한 뒤였고, 거기에 내가 수락한 다음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의사께서 뭔가를 들고 어두운 얼굴로 나오셨다.
"혈액검사가 지금은 어려울 것 같아요."
선생님이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관을 보여주며 말했다. 미르의 피가 들어있다고 했다. 정확한 용어나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혈액검사를 하려면 피와 뭐가 분리가 되어야 하는데 미르 혈액은 그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검사가 어렵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다른 방법을 동원해 보겠다고 했던 것도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혼자서 초조하게 로비를 오가며 기다리는 시간이 또 얼마간 지나갔다.
"미르 보호자님..."
수의사께서 전보다 더 어두워진 얼굴로 나와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미르 간 수치가 얼마인지 정확히 측정할 수가 없어요."
기계가 잡아낼 수 있는 최고치라는 게 있는데 그 최대치가 나왔다고 했다. 그 수치보다 낮아야 간 수치를 파악할 수 있는데, 미르의 경우 그 최대치가 나왔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 최대치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고, 얼마큼 높은지 측정할 수 없다고 했다. 뒤이어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려왔다.
"좀 더 지켜봐야하겠지만 아무래도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그렇게 되묻고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충격이 크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때 내가 그랬다.
야간병원까지 오는 동안 미르가 잘못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니... 그 말은 미르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니던가...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수의사께서 이렇게 물어오셨다.
"미르가 독성물질에 중독된 것 같은데.... 혹시 의심 가는 거라도 있으세요?"
독성물질이라니? 중독이라니?
그럴 이유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산책 중에 뭘 주워 먹진 않았나요? 아니면 산책로에 농약을 쳤거나...."
미르는 입이 까다로운 아이였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의심도 강했다. 자기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입에 익숙한 음식만 줄기차게 고집했다. 한 마디로 미르는 편식이 심했다. 길바닥에 떨어진 음식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아이였다.
미르가 다니는 산책로에 농약을 쳤는지 거기까지는 알 길이 없었다. 방역트럭이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건 확실했다. 아파트 화단에 농약을 치겠다는 방송을 듣지도 못했다.
"그럼 집에서 먹은 음식 때문일 수도 있어요. 초콜릿이나 자일리톨 같은 게 치명적일 수 있거든요."
수의사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초콜릿? 준 적 없고, 미르가 나 몰래 먹은 적도 없다.
자일리톨이나 포도 등 개에게 금지된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의심 가는 것이 있기는 했다.
"미르가 사료를 안 먹어서 육포 간식을 좀 많이 먹였어요. 그것 때문일 수도 있을까요?"
생산단가를 맞추기 위해 사람이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는 사람들에 관한 뉴스가 자주 들려오던 때였다. 어쩔 수 없이 육포 간식을 먹이면서도 꺼림칙했던 기억이 났다.
"글쎄요?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제가 확인을 할 수 없어서 단정 지어 말하기가 어렵네요. 또 의심 가는 건 없으세요?"
"그거 말고는 별로...."
그때 뇌리를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나는 커피를 아주 좋아했다.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누가 물으면 커피 마실 때라고 주저 없이 말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도 커피를 타는 일이었고, 글을 쓸 때도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너무 맛있게 마셨던 걸까. 내가 커피를 홀짝이면 미르가 자기도 한 모금 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이건 엄마 거야. 미르는 먹으면 안 돼."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미르도 고집을 부렸다. 가슴을 타고 올라오며 미르가 한 입만 달라고 보채자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모금쯤은 괜찮겠지....'
그러나 커피 맛을 한 번 본 미르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커피 냄새가 나기만 하면 자기도 좀 달라고 떼를 썼다. 그때마다 나는 마지못해 한 모금의 커피를 미르에게 허락하고는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수의사께 사실대로 이실직고했다.
"커피 때문인 것 같군요."
수의사께서 비로소 의혹이 풀렸다는 얼굴로 차트를 작성했다. 미르의 차트에는 이런 진단명이 적혔다.
커피중독에 의한 급성 간염.
그러니까 결국, 미르가 이렇게 아프게 된 건, 생사를 오가게 된 건, 모두 나의 치명적인 실수 때문이었던 것이다.
커피를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미르에게 너무 미안했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원인을 파악한 수의사 선생님은 당장 필요한 조치와 바로 진행해야 할 추가검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나는 넋이 나간 상태로 "네, 해주세요."라고만 대답했다. 치료 비용이 얼마가 나올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틈도 없었다.
"선생님, 우리 미르 좀 살려주세요."
나는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으며 수의사께 부탁드렸고, 그분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장담은 못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금 나왔던 곳, 그러니까 아이들의 입원실과 처치실과 검사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텅 빈 로비에 혼자 남아 잠시 서 있는데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이 충격적인 상황을 혼자서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박하게 들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늦게 미안한데... 지금 좀 와줘... 미르가 죽을 것 같아...."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우리에게 닥친 일들이 현실로 확 와닿았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진정하고 말해봐. 미르가 왜? 무슨 일인데?"
어떤 상황인지 울음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해줬다.
"금방 갈게."
내가 그러했듯 그녀도 차가 없었다. 자다 말고 일어나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와준 동생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그때 나 혼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을 들었다면 나는 또 한 번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우선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는 했는데 일단 새벽까지 기다리면서 상태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여기서 기다리는 건 불편하실 테고.... 이 근처 어디 들어가 계셨다가 연락드리면 바로 오세요."
그건 마음의 각오를 하고 대기하라는 뜻이었다.
다리의 힘이 풀렸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여동생이 나를 부축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수의사께 말했다.
"오면서 보니까 근처에 찜질방이 있더라고요. 거기 가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전화 주세요."
무슨 정신으로 그날 진료비를 결제하고 어떻게 찜질방 안까지 들어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있는 기억은 찜질방에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것이다. 그건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신경은 온통 핸드폰에 쏠려있었다. 전화가 오면 어쩌나 불안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