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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생도 호사다마

by 우슬초



미르가 2살 되던 그해 봄에 이사를 했다.

기존에 살던 아파트는 평수가 작아서 공간이 협소했고, 활동력이 한창 왕성했던 미르는 그 좁은 공간을 답답해했다.

미르는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베란다 끝에서 현관 끝까지, 그야말로 전속력으로 왔다 갔다 뛰어다녔다.

하지만 평수가 적다 보니 왕복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관문에 몸을 부딪히고는 했다. 현관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속력을 줄여야 하는데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유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미르야! 그만 뛰어! 숨 차!"


그분이 강림하실 때마다 미르를 진정시켰다.


미르의 기침 문제로 대학동물병원에서 CT를 찍어봤지만 결과는 그전 병원들에서 들었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관지의 형태가 정상견들보다 약간 기형적이기는 하지만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고, 기관지가 좁아져 있지도 않으며, 염증이나 폐렴 소견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수술요법이 불필요하고, 약물 치료의 필요성도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관지 확장제를 처방받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병원을 나서면서 허탈함을 크게 느꼈던 것도 생각난다. 대학병원까지 갔는데도 원인을 찾지 못했으니 허탈할 법도 했다.


딱히 해줄 치료가 없으니 미르의 기침 증세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 호흡에 문제가 있어 여기저기 병원을 다녔으면서도, 미르는 집안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걸 즐겨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뛰지 못하게 말렸다. 하지만 이미 그분이 오셔서 발동이 걸린 미르는 엄마의 잔소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희한한 건, 미르의 혀 색깔이었다. 온몸을 출렁이며 기침을 할 때는 혀가 파란빛을 띠곤 했다. 이런 증세를 청색증이라고 하는데 잇몸이나 혀가 파랗게 변하면 위험신호라고 알고 있다. 병원으로 즉시 달려가야 한다고도 들었다.

그런데 미르는 달리기를 할 때 길게 빼문 혀가 붉은색을 띠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미르를 막아서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붉은색이 돈다는 건 혈액순환이 잘 되는 거고, 미르의 몸 상태가 그만큼 양호하다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달리면서 미르가 짓는 표정도 한몫을 거들었다. 미르는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었다.


'말리지 마세요, 엄마! 저 지금 완전 신나요!'


미르는 아슬아슬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관문에 부딪치기 일보 직전에 휘익 몸을 돌리는 묘기 말이다. 몇 번 문에 부딪치고 나더니 나름대로 거리감을 터득한 모양이었지만 매번 그 묘기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어서 미르가 달리기 시작하면 나는 조마조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러다 부딪치면 어쩌나....


이런 걱정이 들 때마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더랬다. 저렇게 뛰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데 맘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다.


집주인으로부터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뒤,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내 소망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없는 돈 있는 돈 끌어모아 넓은 집을 계약했던 것이다.






이사를 하고 나서 미르가 보인 행동은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포부도 당당하고 여유 있게, 한 번도 부딪치는 일 없이, 우다다다다 뛰어다녔다.

넓은 거실 이쪽 끝에서 현관 저쪽 끝까지의 거리가 이전 집의 두 배 가량 되었으니 그만큼 체력소모도 많았으리라. 미르는 거실을 왕복으로 두어 번 왔다 갔다 하고 나면 지레 지쳐서 말리기도 전에 달리기를 그만두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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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통유리 밑에 놓아둔 쿠션에 배를 쫙 깔고 누워 편안히 쉬는 미르를 보면서 나는 뿌듯했다.

둘이 살기에는 분명 큰 집이었으나 미르에게 넓은 공간을 안겨주고 싶다던 그동안의 염원이 이뤄졌으니 뿌듯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집 근처에 호수공원이 있었고, 미르를 데리고 산책하기 좋은 개천도 있어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건, 미르의 호흡증세가 이사하고 나서 확연히 좋아졌다는 점이었다.


기관지협착증은 기관지 구조나 염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와 환경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는 글을 읽었다. 병원에서 원인을 찾지 못해 치료도 해줄 수 없던 미르의 증상이 이사한 직후부터 괜찮아졌다는 건 환경과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다고 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나아지려나 보다....'


나는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img.jpg 미르가 좋아하던 산책길에서 운 좋게 파랑새와 투샷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호사다마라고 하였다.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따라붙고는 한다.

이 만고의 진리는 견생에게도 적용이 되는 듯했다.


새 집에 어느 정도 적응해 가던 2010년 5월 무렵, 갑자기 미르의 입이 짧아졌다.

사료를 몇 알 먹고는 더 먹으라고 아무리 권해도 먹질 않았다.

미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그랬다.

사료가 맞질 않아서 그런가 싶어 이 사료 저 사료 바꿔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먹이려고 하고 미르는 거부하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개봉하기만 하고 먹지 않는 사료들이 종류별로 늘어갔다. 별이가 있을 때는 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별이도 없는데 이런 행동을 하니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먹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는 미르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는 날들도 많았다.


미르는 동물병원에서 팔던 중국산 육포 간식을 주면 거절하지 않고 먹었다.

배고파서 보채는 미르에게 그 간식이라도 먹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문제는 그것만 먹으려고 한다는 데에 있었다.

육포 간식을 식사 대용으로 하면 영양에 불균형이 생길 게 뻔하니까.

역시나 문제가 발생했다.

미르가 응가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 이틀 정도는 '그럴 수도 있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가까워지자 무심히 넘길 수가 없게 되었다.


이사를 오기 전에 미리 알아둔 집 근처 동물병원으로 미르를 데리고 갔다.

그곳 원장님이 내린 진단은 단순한 변비였다. 미르의 대장에 똥이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촉진과 엑스레이 검사까지 해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다고도 덧붙이셨다.

전문가인 선생님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는데도 왠지 느낌이 싸했다. 뭔가, 변비 이상의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건 견주만이 알 수 있는 직감 같은 거였다.


병원에서 관장을 받은 덕분에 미르는 약간의 똥을 빼낼 수 있었다. 난생처음 관장이라는 걸 받아본 미르는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괴로워했다. 미르를 달래며 집으로 돌아와 처방받은 유산균을 먹였지만 미르는 여전히 응가를 편하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사한 새 집은 방이 여러 개라서 침실과 작업실을 따로 두고 살았다. 그날도 나는 작업실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평소 미르는 내가 작업하는 동안 책상 밑에 놓아둔 쿠션이나 방석에 누워 잠을 잤고, 나와 붙어있고 싶으면 의자에 올려달라고 졸라서 내 허벅지에 옆구리를 대고 누워있고는 했다. 미르는 내 반경에서 1미터 이상 멀어진 적이 없다. 미르는 나의 껌딱지였다.


그런데 그날은 언제 작업실을 나갔는지도 모르게 조용했다. 나는 글에 집중하느라 모니터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당연히 미르가 책상 밑 쿠션에서 자고 있겠거니 하면서.


뭔가 불길하다고 느낀 것은 미르의 보챔이 몇 시간째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였다. 앞서도 적었지만 미르는 끼니때 사료를 전혀 먹지 않았고, 먹은 게 없으니 자주 배가 고파 수시로 육포 간식을 달라고 졸라댔다. 그런 미르가 점심이 지나 오후가 가까워오는데도 전혀 보채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다, 이럴 애가 아닌데...'


의아해하며 책상 밑을 내려다봤는데 그곳에 미르가 없었다.


'거실에 있나?'


거실은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집안이 너무나도 조용했다.

불길한 고요.

딱 그랬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불안한 적요가 집안에 감돌았다. 설마, 하는 심정을 안고 침실로 발을 옮겼다.


거기 미르가 있었다. 불을 꺼놓아 어두컴컴한 방의 침대 위에 네 발로 우두커니 문을 등진 자세로 서 있던 미르는 나의 등장에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돌아봤다.


"미르야, 여기서 혼자 뭐 해?"


나는 전등스위치를 올려 불을 켠 뒤 침대로 가까이 갔다. 미르는 얼음동상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며 나와 침대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눈빛이 굉장히 불안했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질러놓고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의 모습 딱 그거였다.


나는 이불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불이 펑하니 젖어있었다. 미르가 쉬를, 그냥 싸놓은 것도 아니고 아주 많이, 물동이 하나를 거기다 쏟아부은 것처럼 아주 흥건하게 쉬를 해놓았던 것이다.


"아, 정말! 이게 뭐야?! 내가 못 살아!"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이때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미르가 살아있을 때에도, 미르가 가고 난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장면들이 몇몇 있는데, 가장 크게 후회하는 때가 언제였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바로 이 순간을 꼽을 것이다.


미르는 깔끔쟁이였고, 그래서 배변패드에 쉬를 할 때도 소변이 안 묻은 쪽만 골라서 쉬를 했으며, 발바닥이 더러워졌으면 닦아달라고 졸라대던 아이였다.

별이는 배변훈련을 끝내고도 이불에 자주 쉬를 싸서 여러 번 이불을 빨아야 했지만

미르는 배변훈련을 할 때조차 이불에 실수를 하지 않았다.

갑자기 토를 해서 이불을 빤 적은 있지만 미르의 쉬 때문에 이불을 빨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랬던 미르가 그렇게나 많은 양의 소변을 이불에 쏟아냈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때 나는 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 하던 짓을 했다는 것과

이불을 더럽혔다는 것과

그 이불을 빨아야 한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평소 안 하던 실수를 해서 미르 자신도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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