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언제나 방심한 순간에 우리를 덮친다. 미리 함정을 파놓고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복병처럼, 일상의 어느 지점에 바짝 엎드려 숨어있다가 미처 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일시에 우리를 덮쳐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미르가 침대이불에 많은 양의 소변을 싸놓았던 그날의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놀라서 허둥거렸고, 미르는 미르 나름대로 그 작은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놀라 정신을 못 차렸다.
하지만 나는 미르의 몸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아니, 뭔가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그 느낌이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었다.
그날의 불운은 미르의 소변 실수로 끝난 거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그게 나만의 바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한바탕 혼이 난 미르는 내 눈치를 보면서 책상 밑의 방석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입이 댓 발은 나와서 툴툴거리며 이불을 세탁기에 돌린 뒤 책상 앞에 앉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르는 미르대로 서운함이 컸는지 뭘 좀 달라고 보채지도 않은 채 잔뜩 몸을 웅크린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화는 났지만 그래도 저녁은 먹여야겠기에 쓰던 글을 중단하고 미르를 불렀지만 미르는 어쩐 일로 반응이 없었다. 그 모습이 또 미워서 나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가며 거실로 나갔고, 미르에게 줄 육포 간식을 챙겨 작업실로 돌아왔다. 미르는 별로 먹고 싶지 않은지 자꾸 고개를 돌렸다. 어딘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내가 애를 너무 잡았나?'
미안한 마음이 쭈뼛쭈뼛 고개를 들었다. 웅크리고 누워있는 모습이 속상하기도 했다. 나는 몸을 구부리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 미르 옆에 누웠다.
"그러니까 왜 그런 실수를 했어. 우리 똑똑한 미르가...."
미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래주자 서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미르가 나를 돌아봤다. 뭔가 하소연하는 듯도 하고 원망이 실린 듯도 한 그 눈빛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혼내서 미안해. 엄마가 사과할게. 그니까 맘 풀고 이거 먹자, 응?"
나는 어르고 달래며 미르에게 간식을 내밀었다. 미르는 마지못해 받아먹었다.
그랬다. 그건 마지못해 먹어준 것이었다.
그때 미르의 뱃속 사정은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마가 화해를 청하며 자꾸 간식을 내미니 차마 거절을 못하고 억지로 먹어주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비록 간식이긴 했지만 저녁을 먹였고, 혼낸 미안함을 어쨌든 풀었다는 것에 만족해하며 책상 밑에서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날 저녁 일곱 시쯤이었을 것이다.
미르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 구토에 음식물이 그대로 섞여있었다. 내가 잘게 잘라주었던 작은 덩어리들이 소화도 되지 않은 채 위액과 함께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르는 그전에도 속이 안 좋으면 종종 토를 했기 때문이다.
'내일 오전까지 지켜보고 계속 불편해하면 병원에 데려가야지.'
동물병원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서둘러 준비하고 가도 도착하면 이미 늦을 것 같았다.
그런데 두어 번이면 끝날 줄 알았던 구토가 다섯 번을 넘기고 열 번까지 이어졌는데도 멈추질 않았다.
어디가 아파도 크게 아픈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미르의 증상을 설명했다.
"오늘은 진료가 끝나서 지금 데리고 오셔도 봐드리기가 어렵고요. 좀 더 지켜보셨다가 열 시 이후로도 구토가 안 멈추면 24시간 하는 병원으로 가보세요."
일단 수의사 선생님이 불러주는 병원 전화번호를 받아 적기는 했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변해있었다.
24시간 동물병원이라니... 인간들의 기준으로 치자면 응급실행이 아니던가.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다.
하지만 마냥 멍해있을 수는 없었다.
수의사 선생님과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미르가 또 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날밤 미르는 20번이 넘도록 구토를 했다.
수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열 시가 되기도 전이었다.
어쩌지? 어째야 하지....
동네 병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묻기에는 시각이 너무 늦어있었다.
더 기다려봐야 하나? 지금 가도 되나?
안절부절못하며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위액마저 모두 토해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어진 미르가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픽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택시를 콜 했다.
수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24시간 동물병원은 내가 사는 도시가 아닌 인근 도시에 위치해있었다.
그곳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깝다고 했다.
"미르야,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아...."
몇 분 뒤에 도착한다는 기사분의 전화를 받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미르를 안아 가슴 쪽에 메는 이동가방에 넣었다. 급하게 지갑과 핸드폰을 챙긴 뒤 집을 나서면서도,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라타면서도, 생전 와 본 적 없는 낯선 도시의 밤 도로를 택시를 타고 달려가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별 일 아닐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러나 이건 별일이라고, 지금 큰일이 터진 거라고, 미르가 침묵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차만 타면 미친 듯이 짖어서 광견이냐는 핀잔까지 받던 미르는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미르의 불길한 침묵은 24시간 동물병원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나는, 병원의 출입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급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애 좀 봐주세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던 병원 안,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던 로비와 그 로비에 고여있던 서늘함과, 한동안 이어지던 차가운 고요함이.
"선생님! 아무도 안 계세요?"
나는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안쪽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푸른 옷 위에 흰 가운을 입은 수의사 한 분이 삐쭉 고개를 내밀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로비 쪽으로 나왔다.
"몇 시간째 계속 토를 했어요."
나는 울먹이며 상황을 설명했고, 뭘 먹였는지 묻는 선생님에게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동안 내 품에 안겨있던 미르의 몸이 또 꿀럭거리기 시작했다.
"내려놓으세요."
그 말대로 로비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미르의 구토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데 거품이 잔뜩 일어난 진한 갈색 위액에 핏덩어리가 섞여있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구토를 끝내자마자 미르가 혈변을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