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야, 울지 말고 여기서 자자."
나는 미르를 달래며 침대 끝의 바닥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미르 전용 방석으로
데려가서 눕혔다.
밤이 제법 깊어 있었고, 나는 몹시 피곤했다.
미르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 책상에 붙어 앉아 종일 글을 썼고,
미르를 만나기까지 긴장 상태에 있었으며,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지쳐있었다.
얼른 미르를 재우고 나도 자고 싶었다.
하지만 미르는 내 사정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계속 울어댔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작은 저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나
놀랍고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더구나 내가 사는 곳은 복도식 아파트였다.
이웃집에서 시끄럽다고 쫓아올 것 같아서 나는 안절부절이 되었다.
"미르야, 제발 그만 울어. 이렇게 부탁할게, 응?"
사정하고 또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혹시 목이 말라서 그러나?
물그릇 앞으로 데려가봤지만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손가락에 물을 축여 입에 가져댔지만 고개를 휙휙 저어댔다.
그럼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런가?
나는 서둘러 일어나 물을 끓였다.
나에게 오기 전까지 미르는 엄마 젖과 물에 불린 사료를 같이 먹었다.
지인의 친구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그분은 미르가 젖을 뗄 때가 됐다면서 그곳에서 미르가 먹던 사료를 챙겨주기도 했다.
사료를 급하게 바꾸면 탈이 날 수도 있으니 새 사료에 적응이 될 때까지
얼마간은 기존에 먹던 사료와 반반씩 섞어서 물에 불려 먹이고
차츰차츰 기존 사료의 양을 줄이라고도 알려주셨더랬다.
물이 끓자 일단 미르가 기존에 먹었던 사료만 물에 불렸다.
안타깝게도 미르는 그 사료도 거부했다.
간식을 주면 혹시 울음을 그치지 않을까 싶었다.
지인분의 친구분이 미르 또래 강아지들에게 먹였다며 간식도 조금 챙겨주었더랬다.
하지만 그것도 퇴짜를 맞았다.
그럼 이제 어째야 하나....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미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진짜 엄마, 모견이었던 것이다.
"미르야, 이제부터 내가 엄마야. 진짜 엄마한테는 못 가."
귀가 아직 안 열려서 못 알아들은 건 아닐 것이다.
귀가 안 들려도 느낌으로 아는 것들이 있으니까.
미르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깐 어디 놀러 가나 싶었다가 눈을 떠보니 낯선 곳이고, 엄마는 없고....
놀랍고 두렵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이 작은 생명체의 충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미르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끼는 기억 중의 하나가
이날의 내 태도였다.
가뜩이나 예민하게 곤두서있던 내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졌고
나중에는 짜증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뚝! 그만 울라니까!"
나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미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 잘 지내보자.'
내 무릎에서 잠든 미르를 향해 마음속으로 건넸던 말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애앵! 애앵! 앵앵!
이제는 미르가 갓난아기가 우는 것 같은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이때는 미처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미르는 자기주장이 강한 강아지였다.
뭐가 좋은지, 어떤 게 싫은지 의사표현이 확실했다.
게다가 고집도 셌다. 그것도 아주 무척.
고백하자면 나도 고집이 센 편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반려견은 견주를 닮는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을 이렇게 고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견주는 자기랑 똑닮은 강아지를 만나게 되어있다.
닮는다는 말은 함께 지낸 시간이 늘어가면서 서서히 물들듯이 비슷하게 변해가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미르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똥고집 꼬꼬마였던 것이다.
어쩌면 하늘이 작정하고 미르를 나와 맺어준 건지도 모르겠다.
'너와 똑같은 아이를 네게 보낼 테니 네가 어떤 모습인지 잘 보거라.'
우리 인연에 이런 깊은 뜻이 담겨있는 건 아닌지...
그러나 나는 신의 심오한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 데려온 날에 이렇게 빽빽 울어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미르의 울음소리는 밤 깊은 시간에 발정 난 암컷 고양이가 우는 소리하고도 비슷했다.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청력을 자극하는지.
큰일 났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없는데...
그래도 뭔가 해야만 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미르가 자지 않고 울고만 있다고,
이런 땐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다급하게 물었다.
안아주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데려올 때만 안아줬을 뿐,
미르가 저렇게 우는데도 안아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미르야, 괜찮아, 괜찮아...."
나는 우는 미르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그 아이의 작은 몸을 토닥여줬다.
내 심장박동과 체온이 느껴져서일까.
미르의 낑낑거림이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진작 이럴걸. 왜 안아줄 생각을 못했을까.
내 품에서 이내 잠이 든 미르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도 잘 수 있겠다...
나는 미르를 방석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침대로 가 누웠다.
그 순간,
낑! 낑낑낑!
혼자 둔 걸 귀신같이 알고 미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방석에서 기어 나와 침대 바로 앞까지 와서 목을 쭉 빼고 나를 올려다보며....
미르를 울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모견의 품에서 잠이 들었을 아이...
미르는 체온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침대를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반려견을 입양하기로 결심하면서 정해놓은 생활수칙 같은 거였다.
침대에는 절대 올려놓지 않는다.
강아지와 잠은 따로 자기로 굳게 결심했던 것이다.
(2009년 2월 1일자 사진. 잠잘 때 토끼처럼 귀가 서곤 했다.)
"미르야, 미안한데 침대는 안 돼. 너는 여기서 자야 해."
침대가에서 낑낑대는 미르를 전용방석에 데려다 놓고 돌아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부터 악몽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미르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정말 고집스럽게, 저러다 목이 쉬겠다 싶을 때까지 울었다.
나는 내 결심을 지키기 위해 고집스럽게 침대에 누워 못 들은 척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승자는 미르였다.
귀를 막아보기도 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쓰고 버텨도 봤지만
작디작은 꼬맹이 미르의 똥고집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어휴, 그래! 내가 졌다, 졌어!"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미르를 침대로 데려와 내 옆에 눕혔다.
그러자 미르가 마치 모견의 품으로 파고 들듯이 내 옆구리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언제 시끄럽게 울어댔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아주 조용하고 얌전한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