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하는데, 진짜인지 모르겠어.
영화 <조>의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서 '보고 싶어요' 해놓고 미루다가 저번 주에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레아 세이두가 나오기도 하고, 이완 맥그리거의 로맨스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제도 흥미로웠다. 인간한테 사랑에 빠진 로봇. 로봇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에서 아마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답을 한번 훔쳐보기 위해 영화를 보았다. 훔쳐본 결과는 마지막에 말하기로 하겠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참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영화의 시작은 '조'의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한다. 조는 '사랑하는 사랑이 죽고 싶다면 도와줄 건가요?'라는 질문에 머뭇거린다. 밖에 있던 '콜'은 조한테 괜찮냐고 물어본다. 조는 괜찮다고 하고 질문에 대답을 한다.
잘 모르겠어요.
조는 커플들의 연애 성공률을 알려주는 연구소에 다닌다. 그곳에서 조는 많은 연인들의 테스트를 돕고 있다. 그런 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조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콜에게 커피를 사들고 가면서 호감을 보인다. 콜은 이혼 후 일에 몰두를 해서 그런지 그런 조의 호의를 눈치채지 못한다. 대신 이번에 새롭게 선보일 로봇을 조에게 소개한다. 그 로봇은 겉보기에는 사람과 구별이 안 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로봇의 이름은 '애쉬'. 콜은 애쉬를 소개해준 뒤 전 부인 '애마'의 전화를 받고 자리를 떠났다.
이후 애쉬는 정상 작동을 하고 연구소를 돌아다닌다. 조의 볼을 만지던 애쉬는 '저보다 정말 부드럽네요'라는 말을 건넨다.
밤에 다시 콜의 사무실을 찾아간 조는 애쉬와 콜이 춤추는 것을 지켜본다. 조를 발견한 애쉬와 콜은 조한테 애쉬와의 춤 연습을 부탁한다. 후에 다시 첫 장면에 나왔던 것처럼 연애 성공률 테스트한다. 그 결과를 갖고 콜 몰래 콜과 자신의 연애 성공률을 확인한다. 결과는 0%. 그녀는 실망한다.
다음 날, 애쉬한테 신약품 '베니솔'을 소개해주는 조. 베니솔은 첫사랑의 강렬한 느낌을 약을 먹으면 2시간 동안 느끼게 해주는 약이다. 마치 영원하고 강렬한 사랑. 애쉬는 조한테 같이 그 약을 먹어보자고 요청한다. 하지만 조는 애쉬의 사랑은 프로그램일 뿐. 로봇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대신 조는 애쉬한테 사회적응을 하러 가자고 이야기한다.
조는 애쉬를 술집에 데려갔고 콜은 그런 둘을 보면서 정말 사람 같다고 느낀다. 애쉬와 이야기를 하던 조는 콜에게 찾아와 술집 지하로 데려간다. 지하에는 버려진 로봇들의 사창가였다. 콜을 역한 기분을 느껴 밖으로 뛰쳐나온다. 조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알고 있다는 콜. 조는 자신과 콜의 연애 성공률이 0%였다는 것을 콜에게 이야기한다. 콜이 자신을 생각하는지. 콜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조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어디론가 데려간다.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조의 집. 조의 집 키를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 열며 방으로 조를 데려가는 콜. 조는 콜에게 자신의 집 키가 왜 있는지 의문이다. 콜은 조가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로봇이며, 이 집은 연구소 소유라서 집 키가 자신한테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조는 믿을 수가 없었다. 콜은 조에게 눈동자를 거울을 통해 보라고 말한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눈동자를 본 조. 믿지 못할 진실에 마주한 조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조는 콜의 사무실로 가 애쉬와 이야기한다. 조의 사실을 들은 애쉬는 오히려 그런 조가 부럽다고 한다.
그때 들어오는 콜. 콜한테 조는 자신이 콜을 좋아하게 설계되었는지 물어본다. 콜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조의 인격체?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콜과 조는 조의 기억의 발자취대로 장소를 찾아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억은 가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는 조. 자신의 기억 속 장소에서 콜과의 추억을 만들어간다.
이후, 연구소에서 더욱 애틋해 보이는 둘의 관계. 그걸 지켜보는 애쉬. 애쉬는 조한테 사내연애는 비극으로 치닫는다고 말한다. 애써 쓴웃음을 짓는 조. 박람회에서 애쉬는 연설을 하게 된다. 로봇과의 연애.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고. 조와 콜은 장소를 옮겨 목소리를 화면으로 표현해주는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치는 둘. 그러다가 키스를 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영화에서 보이는 사랑의 초반 대전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다. 로봇과 인간은 사랑에 빠질 수 없고, 빠지더라도 그것이 로봇의 프로그램일 뿐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관객한테 말을 한다. 관객은 조와 콜의 사랑을 보면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정말 조가 가지는 감정은 프로그램일까? 정말 콜에 대한 사랑은 이진법으로 만들어진 코드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도 무엇이 진짜인지 연애하는 동안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의 정의는 없으며 어떤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정의는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쯤에 조는 콜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조와 콜 사이에 있던 감정이 가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와 콜의 추억은 틀림없이 진짜이며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연인들이 예전에 좋았던 연애 초반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진짜와 가짜. 그것은 조와 콜 사이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조가 로봇이고 로봇과 사랑을 할 수 있냐는 물음과 혼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조를 보면서 더욱 인간 같다고 생각한다. 평소 인간은 삶과 살면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혼란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정의는 없는 세상이라는 게 나의 주관이다. 그런 점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조의 모습은 나에게는 한 명의 인간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후에 (여기서부터 약간의 스포) 조와 콜이 결별을 한 후 '베니솔'이라는 약을 통해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눈다. 그 사랑은 기꺼해야 2~3시간이 지나면 끝나게 되는 사랑이다. 이 부분에서 현대사회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오로지 성욕을 채우기 위한 만남. 인스턴트 사랑. 그런 모습에서 인간의 본질을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하게 만드는 베니솔이라는 약품이야말로 프로그램 같다고 느꼈다. 진짜가 아닌 가짜. 어쩌면 조와 콜은 가짜인 사랑을 느낀 다음에서야 진짜인 사랑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플라톤의 '이데아론'도 생각이 났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데아는 현실 세계 밖의 세상이며 모든 물질과 사물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도 이데아이며 인간은 태어날 때 레테 강을 건너면서 이데아 세계에 대한 기억을 상실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데아는 오직 인간의 이성으로만 알 수 있다고 한다. 동굴에 비유를 많이 하는데,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있는 동굴에 사물의 그림자가 동굴 벽면에 비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보고 사물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사실 사랑이라는 것도 이데아 세계에 본질이 있고, 현실 세계의 사랑은 허상인 것이다. 우리는 그런 허상을 보면서 사랑이라고 믿는다.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보려면 인간의 이성으로 봐야 하는데, 사실 현실에서 인간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감성에 따르다. 특히 사랑을 할 때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어쩌면 로봇이 더욱 사랑의 본질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봇은 인간의 이성적인 부분을 특화하여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봇은 감성적인 개념인 사랑을 못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데아론을 바탕으로 생각하며 오히려 사랑의 본질을 로봇이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조가 콜에게 사랑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사랑의 본질은 이데아론에서처럼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 <클로저>에서 나온 것처럼 사랑은 눈으로 보이지도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다.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이데아 세계 저편에 있다고 믿을 수 있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느꼈던 감정과 기분. 그 날의 날씨. 장소. 웃음. 울음. 기쁨. 화남. 뜨거웠던 포옹. 사랑스러운 키스. 그 모든 것들은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추억들을 사랑이라고 칭하겠다. 다만 인간은 그 순간들을 현재에서 사랑으로 느끼기에는 많은 감각들이 무감각해졌으며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 같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과 어느 대상과의 보이지 않는 스파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뜨거운 열기는 느껴지며 순간마다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어쩌면 그 스파크에 데인 흔적들을 추억이라고 부르나 보다.
왓챠 평점: 4.0 / 5.0
몇줄평:
그녀와의 추억은 진짜였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