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지만 관계에 있어서 서툰 우리들
영화 <우리들>은 평소 영화를 좋아하던 나에게 자연스럽게 유명한 작품이라고 입소문을 통해 들어왔고, 무엇보다도 영화 포스터가 매력적이라서 보고 싶었던 영화이다.(보통 영화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야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만큼 영화 포스터가 마케팅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는 <우리들>과 같이 담백한 영화가 좋다. 담백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들은 무엇보다도 묵직해서 좋다. 우리들 모두 느꼈던 감정들이지만 우리는 그 감정들을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살아간다. 두 명의 소녀들이 서로에게 갖는 감정들. 그것들은 아련하면서 날카롭게 느껴진다. 일상적인 감정들이라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윤가은 감독은 그런 감정들을 표현할 줄 아는 감독인 것 같다. 그리고 이창동 감독과 사제지간이라서 더욱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이창동 감독은 기획 총괄을 담당했다. 일상 속 감정이지만 눈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마주하지 않으려는 감정들.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는 연출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영화 <우리들>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은 작품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전 세계인들이 모두 공감하는 것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니까. 인간이라면 느끼는 그런 본질적인 것. 언제나 본질적인 것은 통하고 나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좋다. 세상은 너무 거짓으로 치장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암튼 영화 <우리들>로 다시 포커싱 잡아 이야기하자면 영화를 보며 학창 시절 우리들이 얼마나 관계에 있어서 힘들고 교활했으며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했는지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전달해주는 역할로 아역배우들의 연기도 한몫했다. 무엇보다도 '이선'을 연기한 최수인 배우는 눈빛으로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인 것 같다. 같은 무표정이라도 감정이 실려있고 표정을 통해 관객한테 감정을 전달해준다. 영화 포스터는 정말 따듯하지만 영화를 보며 드는 감정은 햇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처럼 차가우며 날카롭게 찔러 온다. 그 시절 우리가 겪었던 감정들을 다시 경험해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팀을 나누고 있다. 한 명씩 자기 팀으로 가는데 마지막에 남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선'(최수인)이다. 피구 경기 팀을 나누고 있다. 선이가 팀으로 가자 그 팀 아이들이 싫어하는 티를 낸다. 그런 아이들의 태도에 익숙해 보이는 선. 최대한 구석으로 간다. 힘없이 공에 맞아 아웃되는 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선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곧지 않은 시선들만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자신을 왕따 시키던 무리의 대장인 '보라'(이서연)이 다가와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했다. 선이는 처음 초대받는 생일에 기분이 좋아서 집에 가서 보라에게 선물할 팔찌를 만드는데 몰두한다. 방학식이 끝나고 선이는 보라의 청소를 대신해준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학생을 만나게 된다. 방학이 끝나면 자기랑 같은 반이라고 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지아'(설혜인). 그렇게 짧은 만남을 갖고 얼른 보라네 집으로 향한 선. 하지만 그 집에는 보라는 없고 이상한 아저씨만 살고 있을 뿐이다. 육교에서 난간에 기대 슬퍼하는 선. 그런 선 옆으로 아까 만난 전학생 지아가 지나간다. 전학생이랑 같이 집으로 향하는 선. 전학생은 선한테 덕분에 길을 알게 돼서 고맙다고 한다. 선은 그런 전학생한테 원래 보라한테 줄 팔찌를 선물로 준다. 그렇게 선의 마음의 끈이 지아에게 이어지게 된다.
여름방학이라는 즐거운 시간처럼 선과 지아의 우정도 금세 커져간다. 선은 지아네에 놀러 가서 자신의 집에는 없는 물건들은 흥미롭게 구경한다. 지아는 그런 선의 마음도 모른 채 자신의 집이 심심하지 않냐고 묻는다. 선은 너무 재미있다고 말한다. 지아는 할머니 집이라 심심한 것만 있다고 투덜 된다. 선의 엄마는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 지아는 엄마는 영국에 있어서 자주 못 본다고 대답한다. 선은 지아도 영국에 간 적이 있냐고 묻는다. 지아는 몇 번 간 적이 있다고 대답한 후 우리 집 너무 심심하지 않냐고 선에게 묻는다. 그렇게 둘은 동네 놀이터로 가서 그 나이에 맞게 그네도 타면서 재미있게 놀고 수다를 떤다. 꿈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에 보라 무리가 놀이터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선이는 그쪽으로 눈이 가게 된다. 아직 보라의 거짓말이 상처로 남아있는 선이다. 그 후 둘은 방방을 타러 갔는데 선은 주저한다. 지아는 그런 선한테 방방 타기 싫냐고 묻자 선은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지아는 자기가 쏘려고 했다고 하면 선을 데려가지만 선은 아까도 쏜 지아한테 미안하다. 하지만 방방을 타면 재미있게 타는 선이다.
선은 엄마에게 지아를 우리 집에서 일주일만 재워달라고 조른다. 엄마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거절. 너희끼리 어떻게 낮에 지내냐면서 안된다고 하는 엄마. 선은 윤도 잘 돌보고 청소도 잘하고 숙제도 잘한다고 한다. 엄마는 당연한 거라고 말한다. 선은 바다 가기로 해놓고 안 간 것 대신이라고 말하자 엄마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지아한테 달려가는 선. 허락받았다며 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두 사람이다. 선과 윤이, 그리고 새로운 객원 식구 지아. 이렇게 3명이서 신나게 놀고 선이 해준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문방구에서 물건들을 구경하는 선과 지아. 선은 지아에게 색연필 세트를 보여주면 정말 이쁘지 않냐고 묻는다. 그런 선과 지아를 보면서 살 거 아니면 만지지 말라고 하는 문방구 아저씨. 조금 이따가 지아가 나가자고 해서 선은 급하게 나온다. 나오자마자 뛰는 지아를 쫓아가는 선. 지아는 자신의 품 속에서 아까 그 색연필 세트를 꺼낸다. 선은 이러면 안 된다고 한다. 지아가 다시 가져다 놓는다고 말하자 선은 그건 아니고 라면서 다시 가져가면서 좋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때 지아한테 전화가 온다. 점점 지아의 표정이 안 좋아진다. 집에 돌아온 후 지아의 기분이 안 좋아진 것을 눈치챈 선이는 지아가 하나 둘 뜯은 복숭아 꽃잎을 갖고 복숭아 물을 만든다. 그렇게 서로의 우정을 손가락에 남긴다. 그날 밤 지아는 자신의 속 마음을 선에게 말한다. 엄마를 본 적이 오래됐다고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엄마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낸다고 말하며 선이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선이도 아빠가 할아버지 이야기만 하면 화를 낸다고 말하며 공감한다. 그렇게 서로 통하는 이야기를 하며 더 우정이 깊어지는 밤이다. 다음 날 아침, 선은 일찍 일어나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즐거운 순간을 보낸다. 그 순간을 본 지아는 다시 자는 척을 한다. 이후 일주일 중 남은 날은 즐겁게 놀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선과 지아.
어느 날, 지아의 집에서 지아 폰으로 게임을 하는 선. 지아는 요즘 영어학원에 다녀서 숙제가 힘들다고 한다. 지아는 선에게 같이 학원을 다니자고 한다. 선은 머뭇거린다. 지아는 돈 때문에 그런 거면 아빠한테 말해서 대신 내준겠다고 말한다. 선은 그걸 왜 너네 아빠가 내냐면 화를 낸다. 그때 핸드폰에 전화가 오고 얼떨결에 전화를 받은 선. ‘전학 가니까 좋냐’는 수화기 너머에 말에 지아는 급하게 핸드폰을 끈다. ‘뭐야’라는 말에 지아는 전에 있던 학교 친구들이 짗궃은 장난을 많이 친다고 한다. 그리고 선이에게 핸드폰 좀 사라고 하는 지아. 핸드폰 배터리도 빨리 닳고 선이네 엄마한테 연락 오는 게 불편하다고 한다. 선이는 그렇게 많이 안 썼다고 말하며 위축된다. 그렇게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며칠 후, 윤과 함께 문방구에 있는 선. 윤한테 나가자고 하는 선. 윤은 그냥 구경만 한다고 한다. 선은' 결국 사달라고 할거면서'라며 윤에게 그만 나가자고 한다. 그 순간 밖에 할머니한테 끌려가는 지아를 본 선. 몰래 지아를 따라가다가 지아와 할머니의 다툼을 본다. 그 후 학원으로 가는 지아를 따라가다가 들킨 선. 둘은 서로 할 말이 있다며 이야기한다. 서로 먼저 말하라고 하는 두 사람. 어느새 어색한 기류는 사라지고 다시 웃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다. 그렇게 친구와의 다툼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순간 윤을 두고 지아를 따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 급하게 윤을 찾으러 간 두 사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아가 학원 친구가 찾았다며 선을 부른다. 마음을 놓인 선.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학원 친구가 보라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묘하게 마음이 불편해진 선. 보라는 지아한테 아는 애냐고 묻는다. 뭔가 쎄하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아빠 빼고 할아버지를 찾아간 선이네 가족. 엄마는 병원비를 보면서 살짝 막막한 표정을 짓는다. 그때 핸드폰을 사달라고 하는 선. 하지만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반으로 지아가 온다는 것을 알고있는 선은 새 학기 첫날 기쁜 표정을 자리에 앉아있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고 잇따라 지아도 들어온다. 그런 지아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이상하게 지아는 시큰둥한 느낌이다. 선 옆에 앉게 된 지아. 하지만 선에게는 시큰둥한 지아가 보라에게는 반갑게 인사를 한다. 묘한 어색함을 느끼는 선. 얼마 후 지아의 생일이 다가왔다. 지아는 생일파티를 안 한다고 선에게 말한다. 그래도 선이는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 지아의 생일선물을 챙기려 돼지저금통까지 깨면서 선에게는 비싸게 느껴질 선물을 사 간다. 지아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지아가 현관문 앞으로 나온다. 지아는 자신을 찾아온 선이를 그렇게 반갑게 맞이하지 않는다. 학원 숙제가 바쁘다면서 얼른 들어간다는 지아. 그때 지아의 집에서 나오는 보라네 무리. 보라네 무리는 선을 보면서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온 거냐면서 선을 무시한다. 선은 얼른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난다. 집에 돌아온 선. 엄마한테 동생 두고 어딜 갔냐고 혼이 난다. 그리고 그 선물박스는 뭐냐면 혼이 난다. 마음이 울적해지는 선.
학교에서 보라네 무리가 선에게 찾아와 지아한테 받은 색연필 세트를 내놓으라고 한다. 빌려갔으면 빨리 돌려줘야 한다며 선이를 괴롭힌다. 선이는 어쩔 수 없이 색연필 세트를 돌려준다. 색연필 몇 개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는 보라네 무리는 선한테 한소리를 하며 떠난다. 지아는 이제 선한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소풍이 있는 하루 전 날 밤에 엄마네 김밥집에서 숙제를 하는 선. 윤이가 친구한테 맞은 사실은 들은 선은 나쁜 말은 한다. 그런 선을 보면서 요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엄마. 선은 아무 일 없다며 괜찮은 척한다. 그때 김밥집으로 들어오는 지아와 할머니. 할머니는 내일 소풍에 가져갈 김밥을 사러 오셨다고 한다. 둘의 사이를 모르는 어른들 사이에서 선이와 지아는 어색한 시간을 보내며 어른들한테 투정을 부린다. 집에 돌아가는 지아와 할머니. 그때 지아의 새엄마처럼 보이는 아줌마가 지아를 차를 태우는 모습을 본 선.
다음 날, 바로 소풍날 혼자 있는 선. 벤치에 앉아서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꺼내려고 하는데 지아가 찾아왔다. 어색하게 벤치에 둘이 앉아 있다. 어제 있던 이야기도 하며 선이네 엄마가 싸준 도시락 김밥도 먹으면서 분위기가 좋아지려고 했다. 그때 선이가 어제 본 것 애들한테 이야기 안 한다고 말하니 지아가 뭘 이야기 안 하냐고, 이야기하려고 했냐며 선에게 화를 낸다. 선은 그게 아니라며 오해를 풀려고 하는 찰나에 보라가 둘이 있는 현장을 보게 된다. 보라는 지아에게 우리 버리고 얘랑 노냐고 하면 떠나자 지아는 보라를 따라간다. 지아를 붙잡는 선. 그런 선을 뿌리치고 가는 지아. 선 발 앞에 떨어진 김밥이 흩어져있다. 마치 선과 지아의 관계처럼 말이다.
점점 멀어지는 선과 지아, 여름방학 때처럼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영화는 어두운 화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편을 나누고 있다. 그때 화면 가운데에 한 소녀가 나타난다. 소녀는 아무 때 묻지 않은 듯 순수해 보인다. 그리고 아이들의 목소리와 상관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 어느 틈에 못 낄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생각과 맞다는 듯 아이들은 그 소녀를 마지막까지 뽑지 않았고 그 소녀가 가는 팀에서는 탄식이 나온다. 소녀는 그런 상황이 익숙해 보였다. 그 소녀의 이름은 바로 ‘이선’이다. 그런 선을 난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선이도 누구보다도 아이들과 같이 즐겁게 놀고 싶을 것이다. 그 나이 때 애들은 다 그러고 싶다. 그 나이 때 애들이 아니라도 사람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들다. 어른들도 그게 너무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렇게 선이는 홀로인 존재로 비추어지면 등장한다.
사람은 태어나자 엄마라는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그 인연의 끈은 평생토록 이어진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난 후 몇 개월 후 또는 몇 년 후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20년이 넘는 세월 후 독립을 하거나 독립 후에도 계속 찾아가게 된다. 만약 사람이 태어난 후 몇 개월 있다가 독립은 해야 한다면 대부분 죽을 것이다. 그만큼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 인간. 한자로만 봐도 사람(인) 사이(간)이다. 혼자일 때는 한 없이 약한 존재이다. 그런 인간 아니 사람이 학교라는 곳으로 가면 오랫동안 맺어온 관계인 부모님을 떠난 몇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게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다. 선이는 어려운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학창 시절 그런 쪽에 가까웠다.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학기가 지난 후 새로운 주위 환경이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들과 나와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어느새 친해져 있었다. 또는 누군가는 나한테 다가왔다. 선이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다. 바로 지아이다. 언제나 홀로였던 아이. 그런 아이에게 I가 아닌 WE가 생긴 것이다. ‘나’가 아닌 ‘우리’. 더욱 든든하면서 힘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선에게는 그런 아군이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의 모함과 선이의 집안 환경 등 선에게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고 선이는 그 장애물들을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모함을 하고 부모님에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홀로 괴로워한다. 그런 선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인간은 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까?
예전에는 생각한 적이 없지만 영화를 자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의자는 앉기 위해 존재한다. 사과는 다른 생물에게 양분을 제공하려고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존재가치를 설명할 때 사람을 중점으로 설명한다. 의자는 (사람이) 앉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재가치를 찾으려고 유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게 아닐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찾으려고 우정을 쌓고 사랑을 하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혼자이면 자신의 가치를 몰라 괴로운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과 지아는 운명적으로 친구가 되었지만 많은 면에서 너무 달랐다. 선은 빌라촌에 부유하지 않은 집이다. 엄마는 김밥집 장사를 하고 아빠는 기술직 노동자이다. 그렇기에 집안에도 부모님이 잘 안 계셔서 동생 윤도 보살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 집안 환경 때문에 그런지 또래 애들보다 더욱 성숙하고 조용한 편이면 돈의 소중함을 알고 아끼려는 아이이다. 이와 반대로 지아네 집안은 부유한 집안이다. 그렇기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질 수 있고 그렇기에 자신감이 넘치며 거침이 없다. 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사랑을 잘 못 받으며 자랐다. 특히 엄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다. 그렇기에 남들에게 미운 받기 싫어하고 그래서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아이이다. 이와 반대로 선이는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아 자란 아이이다. 그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아이이다. 서로의 부족한 점이 상대방한테 있다. 그것을 서로 채워주는 관계라면 정말 좋은 관계라고 볼 수 있었지만 여름방학 동안의 짧은 시간동안의 우정이라서 그런지 서로 채워주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한 점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어려서 그랬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른들도 나한테 없는 것을 남이 가지고 있으면 시기와 질투를 하기 십상이다. 남을 질투하지 않은 관계가 있다면 두 사람 모두 자존감이 어느 정도 높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선과 지아는 각자 결여된 것이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슬아슬했던 관계였는지 모르겠다. 마치 한 교착점을 갖는 두 선처럼 점점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관계. 그런 관계였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의 관계있어서 가장 큰 방해 요소는 아마 ‘보라’였을 것이다. 보라는 영화 초반 선이를 왕따 시킨 주도자이면서 지아를 선이한테서 멀어지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선은 보라한테 잘 보이기 위해 반 청소도 대신해주고 생일선물로 줄 팔찌도 만들었다. 하지만 보라는 선이를 이용만 하고 생일파티 장소도 엉뚱한 곳으로 알려준다. 결국 선은 팔찌를 버리려다가 지아를 만나 팔찌를 주게 된다. 어떻게 보면 보라가 선한테 한 행동 덕분에 선과 지아가 이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또 보라 때문에 또 둘 사이가 끊어지게 되는 것도 시작이 보라로부터 시작돼서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 중반에 선이가 학원을 등록하는 날 보라가 우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날은 지아가 보라를 제치고 영어 점수가 높은 날이었다. 보라는 아마 남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우수함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만약 그 우수함이 없다면 아무도 자신과 어울려 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울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라도 관계에 있어서 어려운 겪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 학창 시절에 선, 지아 그리고 보라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1. 바다
영화 초반 선이는 바다로 놀러 가기로 하고 못 갔다고 엄마한테 지아를 일주일 동안 자게 해달라고 한다. 엄마는 그 말에 수긍하여 결국 허락해준다. 그리고 지아도 선이네서 잘 때 밤에 엄마랑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못 갔다고 말한다. 그 말에 선도 그랬다고 하며 서로 공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못 봤던 바다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보게 된다. 그렇다면 바다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가 친다. 철썩철썩 모래사장을 끊임없이 친다. 모래를 주었다가 뺐어간다. 그런 모습이 마치 선과 지아의 관계 같아 보인다. 영화 한 장면 한 장면들이 그런 파도처럼 관객한테 다가온다. 하지만 바다는 멀리서 보면 되게 잔잔해 보인다.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너무 큰 잔잔한 호수 같다. 무엇이든지 포용할 것 같다. 그런 바다의 특징 때문에 선과 지아는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파도처럼 불안하기에 잔잔한 바다를 보면 마음의 치유를 받으려고, 시간이 지나고 크게 보면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 바다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2. 팔찌
선이가 만들어준 팔찌는 두 사람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선이가 팔찌를 주면서 지아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화 중후반에 선은 자신 몰래 보라네 무리를 초대하고 자신은 부르지 않은 지아에게 배신감을 느낀 후 팔찌를 잘라버린다. 선은 먼저 지아와의 관계를 끊어버린다. 이후 아직까지 팔찌를 하고 있던 지아를 보고 선은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팔찌를 만들지만 (스포주의) 자신의 아빠를 알코올 중독자로 소문낸 지아와 싸우게 된다. 그렇게 팔찌는 다시 이어지지 않게 된다.
3. 복숭아 물
복숭아 물은 선과 지아의 우정의 표식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보면 팔찌보다는 선명하지 않지만 더 진한 느낌을 전달해준다. 선이 지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한 복숭아 물은 선과 지아의 사이가 좋을 때는 손톱을 꽉 채웠지만 둘 사이의 트러블 생길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고 인서트 샷으로 복숭아 물이 점점 사라지는 손톱이 화면에 잡힌다. 결국 마지막에는 거의 없는 듯이 잡힌다. (스포주의) 하지만 없다 해도 남아있기는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은 자신의 손톱에 아직은 남아있는 복숭아 물을 보고 지아가 선을 안 밟았다며 지아의 편에서 애들한테 말한다. 그리고 어색하게 서있다가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끝나는데, 나는 남아있는 복숭아 물처럼 둘 사람의 관계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다시 회복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영화는 마치 어린 시절 남의 눈치를 많이 보던 나와 닮아있는 것 같았다.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조심스러우면서 연약하고 자신감이 없던 그 시절. 마치 선한테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것 같았다. 친구를 사귀는 게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남들과 여럿이 노는 것이 좋았으면 먼저 다가가지 않고 무엇을 그렇게 많이 의식했을까 싶다. 그리고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현재에도, 그리고 지금 많은 고민 속에서 또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는 소위 어른이라고 칭하는 아이들에게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크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 후반 윤의 대사 '그럼 언제 놀아? 나는 놀고 싶은데'라는 메시지. 우리는 언제쯤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아무런 고민 없이 쟁취할 수 있을까? 놀고 싶으면 놀았던 그 시절 우리들이었는데. 이제는 쉽게 그렇지 못하는 반쪽짜리 나가 된 느낌이다. 영화의 제목은 2가지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학창 시절 서로가 눈치를 보며 영약 했던 그 시절 '우리들', 다른 하나는 지아는 사실 선이 원하는 모습이 투영된 캐릭터로 관객한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 '나'와 '참다운 나'를 칭해 말하는 '우리들'. 하나는 냉소적이며 다른 하나는 희망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닌 '우리들' 이런 고민과 관계에 있어 힘든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아 마음 한편으로 위로를 받은 것 같다. 누군가의 관계에 있어서 서툴러도 괜찮다. 하지만 그 관계에 있어서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내 마음속 진심을 전하자 그 관계가 끊여도 잠시 동안 진실된 연결이 있었으니 그걸로 좋은 것이다.
P.S 아버지의 눈물 씬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 당신은 맨날 이슬을 먹는 줄만 알았지만 당신의 눈에서 이슬이 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아버지도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 서툴러겠지... 그래겠지... 당신의 뒷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인간(人間)이지만 매번 관계에 서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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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동안 포스팅을 안한 나 자신에게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