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알바로 자존감을 회복하다

싱글맘 홀로서기의 첫걸음

by 도비앤

이혼을 해야겠다. 결심이랄 것도 없이 마음은 순식간에 정해졌다. 그때 아기가 7개월이었는데, 다행히 의지할 친정집이 가까이 있었다. 나중에 보니 이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전업주부로 있다가 아기를 데리고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바닥이야.

사실 그때까지도 자각하지 못했다. 회사를 다니다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쉰 지 어느새 1년 반이 넘었다. 친정에 들어가더라도 아기를 책임지려면 당연히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혼 전 나는 해외기술영업을 하면서 한 달에 반 이상을 해외에 나가있었다. 어떤 달은 한 달 동안 일주일도 채 한국에 머물지 못하기도 했다. 자신감 넘치던 그 시절이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7개월 아기와 함께 친정집의 작은 방안으로 나는 돌아왔다.


아기 아빠는 양육비로 30만 원을 제시했다. 더 이상 주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나는 그 돈이라도 받자 싶어서 바로 알았다고 했다. 친정엄마는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하룻밤 술값으로도 30만 원을 훌쩍 넘게 쓰는 그 시절 말로 욜로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30만 원을 감지덕지했었다. "나가서 30만 원 벌기가 쉬워"라고 하자 엄마는 기가 차하며 얘기했다. "쿠팡 알바라도 하루하고 와라" 엄마의 권유도 있었지만 부모님도 모두 일하고 계신 상황이라 7개월 아기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쿠팡 물류센터 주말 알바를 신청했다.


쿠팡 물류센터 알바는 그야말로 육체노동의 극치였다. 4월인데도 열약한 환경은 무척이나 덥고 힘들었다. 그러다 냉동창고로 들어가니 두꺼운 방한복을 입어 추위는 덜했지만 자꾸만 안경에 김이 서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신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에 통장으로 꽂힌 7만 얼마의 아르바이트비는 값졌고 그 주 알바도 지원했다. 신기했다.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던 양육비 30만 원이 정말 별게 아니구나 싶었다. 내가 고작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만 일해도 30만 원은 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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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가지 않았던 전업주부 시절이 평화롭고 행복했던 게 사실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걱정 없이 생활하고, 취미생활도 만끽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나에게 찾아온 천국 같았고 여유로운 삶의 극치였다. 돈에 주눅 들지도 않고 하루하루 행복했음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 낮아진 자존감이 기이했다. 아기엄마만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기에 부족했다. 나에게는 누구엄마말고 내 이름 석자가 필요했다.


코로나에 걸려서 결국 그때의 쿠팡 알바는 한 번으로 그쳤지만, 쿠팡알바를 딛고 나는 곧장 홀로서기를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이후로도 나는 마음이 안일해지고, 앞으로 나아가야하는데 두려움이 마음에 드리워질때 쿠팡 알바를 자처했다. 2년전 쯤 또 다시 쿠팡을 찾았을 때, 나는 고작 하루 일하고 엄지발톱에 멍이 심하게 들었다. 여름 한계절이 다 지나도록 그 멍은 내 발톱에 새겨져있었다. 그 멍을 볼때마다, 나는 그 하루의 힘듦을 기억했고 다시 또 도전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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