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과 폭발 그 둘의 공존
첫째가 다니는 대학병원 교수에게 상담을 받았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푸념 끝에 약처방을 권하셨다. 아이는 벌써 몇 년째 약을 먹고 있지만, 막상 내가 먹으려니 망설여지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굳이 약까지 먹어야 하나..?
나는 힘듦이 몇 년 동안 쌓이고 쌓여서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폭발처럼 다혈질의 정점에 선 것 같았다. 약에 대한 거부감과 별개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 또한 느끼고 있었다.
하루도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게 되자, 나는 약 처방을 받아왔다.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약은 화가 안 나게 해주는 약은 아니고, 화가 나기 전에 '아 내가 화가 났네'라고 한 번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저녁 식후 먹은 약은 플라세보 효과인지 몰라도 다음날 바로 효과를 드러냈다.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않고 하루가 끝났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조금 편안해졌다. 이 상태면 약을 복용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일주일쯤 지났을까, 남편과의 사이에서 터졌다. 아이들과는 굉장히 편안해졌지만, 남편은 여전히 내 심기를 건드린다. 삐걱거리던 우리 사이에 남편의 한 마디는 큰 파장을 가져왔다. 그 파장은 마치 억눌려있던 화가 터져 나오듯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져갔다.
하루 건너 하루 꼴로 남편과는 다툼이 지속됐다. 약이 정말 내 화를 없애는 게 아니라 억눌러준다면, 부작용으로 더 폭발할 수도 있을까? 교수와의 면담이 아직도 한 달가량 후다. 약을 지금이라도 끊어야 할지, 남편과 대화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