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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Apr 23. 2018

'꼰대'가 흔히 하는 착각

무례함과 솔직함의 혼동

살다보면 정말 다양한 ‘꼰대’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꼰대’들은 어마어마한 모순과 창조적인 아집으로 이루어져있다.
예를 들면 어려보인다고 초면에 욕설과 반말을 내뱉는 당당함이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행위(근데 정작 자신이 틀렸다.), 내가 법이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경우 등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꼰대들은 무례하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들에게 상처나 피해를 준다. 그리고 자신은 솔직하다고 얘기한다.


‘난 내 감정에 솔직한 편이야. 틀린 건 틀렸다고 얘기해야지. 얘기하지 않으면 몰라.’


무례함은 유아론적 정서다. 유아론적 정서란 상대를 ‘변수’ 즉,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존재로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만들 수 있는 ‘상수’로 여기는 것이다.


다섯 살 짜리 아이는 엄마가 아픈지, 아빠가 피곤한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울고, 기분이 좋으면 웃는다. 그게 바로 유아론적 정서이고, 그 정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 무례함이다.

떼를 쓰면 되는 유아론적 정서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럴 수 밖에 없다.

몸은 성숙했으나, 정서는 그대로인 것이다. 자신의 무례함이 미성숙한 태도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무례함은 어느 정도 극복가능하다.

심각한 문제는 무례함을 솔직함으로 혼동하게 될 때 발생한다.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것(무례함)과 있는 그대로 자신을 내보이는 것(솔직함)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무례함은 종종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로 시작해서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맞춰!’라는 논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솔직함은 타자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로 여기고 무례함은 상수로 여긴다.

솔직함이 힘든 이유는 타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있다면 그건 무례함이다.

오늘 하루, 상대방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감정에 치우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본다. 가식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 편하자고 상대방에게 피해주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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