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의 사람들이 40%의 영광을 차지하는 비결

내 안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질문의 힘

by 권민창

유대인과 한국인은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크게 다르다. 유대인들은 통틀어 1500만 명 정도로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우리 한국인은 8000만 명이 넘어 1.2%를 차지한다. 이스라엘의 땅 넓이는 우리나라 한반도 전체의 11분의 1정도, 남한의 5분의 1정도다. 우리 한국인은 평균 지능지수가 106으로 세계 최고의 IQ이지만, 이스라엘은 94로 세계 45위이다. 국제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는 1-4위로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이스라엘은 OECD 34국가 중 30위 정도에 머문다. 세계올림피아드에서도 우리는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지만, 이스라엘이 최상위권에 들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간으로 보면 우리는 유대인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공부한다. 유대인들의 교육열이 높다지만,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는 우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교사 수준도 우리나라가 단연 세계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지능도 세계 최고이고, 공부하는 시간도 세계 최고이고, 교육열과 교사 수준도 가히 세계 최고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와야 하고 노벨상도 가장 많이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노벨상이 평화상 1명이지만, 유대인은 현재 스스로 유대인이라 밝힌 경우만 해도 200명이 가깝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한국계 학생이 1% 될까 말까 하지만, 유대인들은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처럼 학교와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면 인구 비례로 보아도 유대인보다 한국인이 좋은 대학에 많이 가야하고, 사회적으로 더 많이 성공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 우리는 최고의 지능과 최고의 열심과 노력, 그리고 최고의 교육열을 가지고서도 유대인을 따라잡지 못하는가?


우리가 유대인에 비해 거의 모든 조건이 앞서는 데도 성과에서 뒤지는 것은 우리가 단 하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육방법, 공부방법이다. 수세기 전부터 유대인은 하브루타라는 활동을 즐겨해왔다.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을 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유대 사회에 가면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는 유대인 전통학교인 예시바가 있다. 예시바에서는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매우 시끄럽게 논쟁하면서 공부한다. 때에 따라 여러 명이 하는 경우도 가끔 있으나, 보통이 두 명이고 거의 4명을 넘지 않는다. 이것은 학생들이 짝을 지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논쟁 수업 방식이다. 즉 친구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친구들은 함께 앉아서 본문을 큰소리로 읽고 그것을 토론하고 분석한다. 또 다른 본문과의 관계를 살피고,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그들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해 본다. 그들이 동의가 되지 않을 때는 자신들의 이유를 차근차근 제시한다. 하브루타를 통한 공부는 지평을 넓히고 서로간의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우리에게도 일상 속에서 하브루타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존재한다. 신문에도 있고,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도 있고, 나이든 부모와 학생 간의 문제 속에도 있다. 하브루타의 개념은 현상을 보는 한 가지의 옳은 방법보다 수많은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에 기초한다.

하브루타에 대해 연구자가 내린 정의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며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으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대화가 된다. 거기서 더 전문화되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고 전문화되면 논쟁이 된다.

가정에서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와 자녀가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질문하면서 수업하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에게 질문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짝을 이루어 질문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가 어떻게 특별한 유대인을 만들어 가는가? 하브루타가 어떻게 유대인들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게 하며, 의사나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가가 되게 하고,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만드는가? 그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뇌를 격동시켜 고등사고력을 기른다.

왜 그런가? 질문과 토론, 논쟁만큼 뇌를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논쟁을 떠올려 보라. 그들의 논쟁은 가장 격렬한 머리싸움이다. 법정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그 논리를 파악해야 하며, 자신이 왜 옳은지에 대해 치밀한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상대방이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거나 증거를 댈 때 이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거나 대응하지 못하면 판결에서 지게 된다. 토론과 논쟁은 뇌를 계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고등 사고력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이다.


둘째, 다양한 생각과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한다.

하브루타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견해, 다양한 관점,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창의성이란 다르고 새롭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현재 세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창의성인데, 그 창의성을 가장 잘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브루타이다. 왜냐하면 하브루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탈무드 자체가 랍비와 현자들의 토론과 논쟁집인데, 그런 대가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하고 다른 견해를 갖게 하는 것이 하브루타이기 때문이다. 토론과 논쟁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게 만든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뒤집어 생각하게 한다. 상대방의 의견과는 다른 나만의 견해를 가져야 토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하브루타는 나만의 생각, 새로운 생각,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셋째, 질문을 통해 생각하게 만든다.

하브루타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난다. 질문이 좋아야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질문이 좋아야 생각을 날카롭게 할 수 있다. 배움 역시 질문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배우려면 질문을 가져야 한다. 항상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한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지혜의 출발이다. 알면 알수록 의문이 생기고, 질문이 늘어난다. 그래서 질문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유대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것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창의적인 사고의 틀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왜?’ 라는 질문은 노벨상 수상자의 40%를 배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 불과 600만 정도의 인구로 자신들의 20배 규모인 아랍권에 둘러 싸여서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차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하다. 인간 관계도, 삶도 마찬가지다. ‘기름’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사람들과 대화하고, 또 그 대화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 질문은 우리 삶의 기름같은 존재다. 질문은 막힌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뻥 뚫어준다. 질문을 받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머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동기가 유발되고, 생각이 소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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