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질문 대처법
부득요령(不得要領)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말이나 글이 목적과 줄거리가 뚜렷하지 못해 무엇을 나타내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요령을 잡을 수가 없다는 뜻으로 가장 핵심적인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상대방에게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잘 살펴야 한다. 대화를 나누며 상대의 표정이나 제스처, 말투의 높낮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고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상황이구나.’를 파악한 후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보통 눈치가 빠르거나, 말하지 않아도 중요한 것을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들에게 ‘센스’가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센스’를 점수로 매긴다면, 몇 년 전의 나는 낙제 수준이었다.
‘야, 넌 눈치가 왜 이렇게 없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직장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난 항상 ‘눈치가 없다.’ ‘대화의 주제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 나는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저 사람이 저렇게 얘기하는 의도가 뭘까?’
‘이 작업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같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접근을 하려 노력하지 않고 매번 말하는 곧이곧대로 행하고 생각을 하지 않다보니 시간을 많이 투자하더라도 결과물은 좋지 않았다. 그 때도 항상 ‘나는 머리가 왜 이렇게 안 좋지?’라는 부정적인 질문만 했을 뿐,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까?’라는 생산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추천으로 책을 읽게 됐고, 독서를 하며 조금씩 변화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왜 저 사람은 이 상황에서 저렇게 얘기하는 걸까?’ ‘혹시 이 대화가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일까?’ 이렇게 질문을 하며 읽으며 독서가 훨씬 더 재밌고 이해가 잘 됐다. 그렇게 책을 100권 정도 읽었을 때,
나만의 ‘독서 전 질문법’이 5가지 정도 생겼다.
‘작가가 이 책을 쓴 의도는 무엇일까?’
‘이 책의 주인공이 만약 나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은? 그 문장이 왜 인상 깊었는가?’
이렇게 책을 보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을 대할 때도 혼자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생겼고 사람들에게 ‘요점을 잘 짚는다, 눈치가 빠르다, 센스가 있다.’라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질문을 하는 습관을 가진 후 이성관계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도 있듯 남녀는 사고회로 자체가 다르다.
나는 연애를 할 때도 올인을 하기보다는 내가 할 걸 하면서 시간을 쪼개 여자친구를 만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여자친구에게 ‘일이야, 나야?’라는 굉장히 난감한 질문을 받았었는데,
매번 ‘에이, 당연히 너지.’라고 대답을 하며 그 상황을 타개하는데 급급했고, 또 다시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 땐 했던 말을 안 지키는 나에게 섭섭한 감정을 느끼는 여자친구와 다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생긴 후에 여자친구와 만났을 때는
‘일이야, 나야?’라는 질문에
‘그런 얘기를 꺼내게 해서 미안해.’
라는 대답을 하고 진솔한 내 감정을 여자친구에게 충분히 어필을 했다. ‘그 동안 혼자 속앓이하느라 많이 힘들었지? 다시 한 번 미안해. 내가 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그것만 보는 성향이라 노력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많이 부족해.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마워. 앞으로는 너한테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조금 더 신경 쓰고 노력할게.’ 그 때 여자친구는 ‘이 남자가 단순히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내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얼어붙었던 감정이 눈처럼 녹게 된다. 여자친구가 한 질문의 요점은 미안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이렇게까지 된 상황에 대한 섭섭함과 진솔한 해결책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고 여자친구의 의중을 질문으로 파악했던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독서관련사업을 하는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전화통화만 하다가 직접 봤을 때 내가 생각보다 어려서 그런지, 훈계하는 말투와 자기자랑을 많이 하셨다. ‘이 사람 알지? 내가 여기에도 책을 3000권 정도 기증했어.’ ‘이 사람은 00회사 대표인데, 내가 주기적으로 책을 기증하니까 봐봐. 나한테 이렇게 감사하다고 매번 연락이 오잖아.’ 누구나 인정할만한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00대표와 연락하고 지낸다. 00회사에 도움을 줬다.’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그에게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전의 나 같으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거나, 저 사람은 언제까지 자기 자랑만 늘어놓을까? 라는 생각만 했겠지만,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이 사람이 굳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대화를 들어봤을 때, 이 분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변변찮은 직장을 다니다 독서관련사업을 시작했고, 밑바닥부터 고생을 하다가 사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던 것이다. 초창기에 직장생활을 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나 변변찮은 직위로 인한 한계점 같은 것에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00대표와 연락한다. 00회사에 내가 큰 도움을 줬다라는 부분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식으로 그 사람을 분석했더니 연민도 느껴지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몇 번 맞장구를 쳐주고, 내가 원하는 질문들을 하니 굉장히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셨다.
주위 사람들과 원만히 잘 지내지 못하거나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질문을 해보면 꽤 효과적이다.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사람이 거북한 상대에게 화가 나고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것은 ‘이 사람에게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하지 못하기에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 세상에는 나와 국적과 종교,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밖에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은 굉장히 불행할 것이다.
주변에 공감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그러면 그 사람의 요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상대방과 원활한 소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