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을 통해 당신이 얻는 보람은 무엇입니까?
‘보람차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한 뒤에 결과가 몹시 좋아서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을 갖게 할 만큼 만족스럽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시간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출근할 생각에 암울해져오고,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진척이 더뎌 스트레스를 받는다. 항상 ‘퇴사하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딱히 하고 싶은 건 없다.
무엇보다 퇴사를 하게 됐을 때 갑자기 끊길 안정적인 수입이 두렵다. 부모님들과 주변 사람들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알지만 ‘사회가 어려워. 너는 행복한 거야.’라는 말로 나를 위로한다. 그 말을 들을 땐 ‘그래, 버텨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감정은 일시적이다. 또 쳇바퀴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친한 친구 중에 고등학교 교사가 있다. 이 친구는 교사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사범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모든 게 장밋빛일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 친구는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서 같이 밥을 먹고, 수업도 좀 더 색다르게 진행했지만 주변 교사들은 그 친구를 유별나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학교를 바꿀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교사는 교장이나 교감이 되지 않는 이상 다 평등한 구조였고, 어떤 권력이나 지위를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교장이나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20년의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일까?’라는 질문을 했고, 나는 ‘니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무엇인데?’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잘 모르겠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삶?’이라고 대답했고, 나는 ‘하고 싶은 게 뭐야?’라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아직 확실한 건 없는데, 그런 걸 찾는 방법이 있을까?’라는 대답을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 질문을 했다.
‘니가 교사를 하며 얻는 보람이 뭐야?’
그러자 그 친구는 표정이 밝아졌고,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로 인해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 큰 보람이야. 나는 2년 전에 가르쳤던 학생들과 네이버 밴드를 운영하며 아직도 소식을 주고 받고 있어. 교권이 무너졌고 학생들이 버릇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직 너무나도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 많거든. 그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게 나에겐 큰 보람이고 축복이지.’ 나는 그 친구의 표정을 보고 그 친구가 진심으로 행복해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니가 학교 안에서 큰 변화를 만들 수 없다면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때?’ 그러자 그 친구는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다시 말했다.
‘니가 느끼는 보람은 교육인거 같아.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과 그로 인한 피드백이 널 행복하게 해주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학교라는 조직이 너의 성향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라 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 같은데, 그럼 다른 방향으로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해보는 건 어떻냐는 거지.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학교 밖에서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보는 거야. 넌 지금 SNS를 전혀 안하고, 학교 외에는 다른 취미생활도 별로 없잖아. 그런데 니가 그런 새로운 경험을 해보면 어떻냐는 거야. 예를 들어 유튜브 계정으로 학생들에게 입시 정보나 면접 정보를 알려주면서 소통을 할 수 있고, SNS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소통하는 선생님 컨셉으로 전국에 있는 모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
그러자 그 친구는 신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것도 있구나. 신기하다. 나는 오로지 여기 하나에 집중하자는 생각만 했었는데, 또 다른 방면으로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을 표현할 수 있구나. 고마워.’ 그 이후 그 친구는 유튜브 채널과 SNS계정을 새로 만들어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학교에서만 보던 학생들의 모습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들을 알 수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졸업을 하더라도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겨서 행복하다고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이나 동기부여 이론의 설명력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 자체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람을 느끼던 일도 익숙해지면 기쁨의 체감이 무뎌가고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면 보람 같은 것은 금방 잊어버리고 회의감에 빠지는 것이 사람이다.
그럴 때 자신에게 스스로 ‘내가 이 일을 통해 얻는 보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이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의 효과를 준다.
첫째는 일에서 얻고 있는 것을 재인식하게 해준다.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일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얻고 있는가’의 문제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을 통해서 얻고 있는 것은 보람만이 아니다. 월급, 사람들의 미소, 감사의 말과 대화, 명예, 성취감 등 직장이라는 곳에서 일을 통해 얻는 것들은 실로 다양하다.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작고 소소한 기쁨들이 곳곳에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해준다. 지금까지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무엇을 얻어왔는지 되돌아보고 지금 당장은 보람을 느낄 수 없더라도 과거에 느꼈던 보람이 당신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생각해보라. 이러한 모든 것들을 이 직장에서 계속해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 처한 어려움이나 낮은 보람의 상태를 극복할 힘이 생길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런 것을 별로 찾을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보람이나 기쁨의 가능성이 희박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다른 직장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직장에서 미래의 보람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현실적일 때가 더 많다. 그냥 보람이 없다, 즐거움이 없다, 관둘까 하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공상만 해서는 지금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차라리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둔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해서 생각하고 적어보는 것이 낫다. 자신이 이 일을 그만두더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도전적인 성향의 사람인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나 오라고 하는 곳이 있는지는 반드시 생각해야할 문제이다.
보람이라는 것은 실은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는 그 무엇이다. 기준이나 형태가 없기 때문에 모두가 각기 다른 보람을 갖고 있다. 혹은 자신이 하는 일이 충분히 보람된 일임에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에 일의 본질 즉, 보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현실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면 자신이 일을 그만 둔 상태와 그렇게 되었을 때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찾지 못하고 있던 보람을 발견할 수도 있다.
보람은 다양하다. 돈이나 명예, 지위나 권력도 보람이 될 수 있다. 어디까지나 보람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또는 감사의 말과 미소, 쾌적한 근무환경, 업무성과의 달성처럼 내면적인 기쁨에 기반을 둔 보람도 있다. 좋은 근무환경에서 제법 나이스한 동료들과 근무해도 진급이 되지 않아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월급은 적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보람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결국 보람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의 내면을 명확히 자각할 때 구체화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상태일 때 보람을 느끼는가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자각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보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이미지화하는데 거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뿐이다. 일에서의 보람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은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찾아야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사람, 환경의 탓도 아닌 바로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보람을 다시 찾으려는 노력만이 그 보람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묻겠다.
‘그 일을 통해 당신이 얻는 보람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