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자친구랑은 얼마나 만났어?

뭐 하는 사람이었어?

by 권민창

E라는 형이 있습니다.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훤칠해, 쉼 없이 연애를 합니다.
그런데 성격은 까칠하고 예민한 편이라 연애를 할 때 여자친구와 많이 싸웁니다.
헤어지는 이유가 대개 비슷해서 참 안타까운 경우가 많은데요, 이 형이 항상 연애를 할 때 여자친구에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전 남자친구랑은 얼마나 만났어?’
이 질문은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진짜 들어서 하등 좋은 게 없죠. 그리고 여자친구가 그 질문에 답을 하면 연타로 찌질콤보가 들어갑니다.
'뭐 하는 사람이었어? 어떤 점이 좋았는데?’
최악입니다. 축구로 치면 군면제가 걸려있는 아시안게임 결승, 후반 45분까지 1:0으로 리드하고 있다가 추가시간 5분에 2골을 먹어 역전당한 격입니다.
말하는 여자친구도 기분이 thelove고 듣는 E도 기분이 thelove습니다.
처음엔 듣고 쿨한 척 합니다. 차라리 여기서 끝나면 다행입니다만.. 여자친구와 싸울 때마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럼 다시 걔 만나지 왜?’ ‘걔는 안 이랬어?’
(비쥬얼만 보고 연애하지 마십시오..내면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 만나면 안 됩니다..)
나이가 어렸을 땐 그러려니 했지만, 30줄이 넘은 지금도 그렇게 연애를 하니 비쥬얼에 혹해서 다가왔던 여자친구들도 E의 찌질한 성격에 정이 떨어져 금방 떠나게 됩니다.

‘민창아, 내가 도대체 어디가 부족해서 연애를 오래 못하는 걸까?’
E의 문제점을 왜 말해주지 않았냐고요? 이미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말했죠.
그런데 도통 듣질 않네요.
그래서 그냥 쓴 웃음 지으면서 ‘나도 몰라 형’하고 말아버립니다.
연애를 하면 의외로 E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서는 이런 거겠죠.
‘서로에게 솔직해야 더 진실 된 연애를 할 수 있어.’

그런데 사실 이런 연애는 솔직과 진실이라기보다, 솔직과 진실로 포장된 집착과 찌질함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서로가 누구를 만났고, 몇 번을 만났으며, 그 사람과 어떤 관계였나. 이런 질문들은 들어봤자 서로에게 득이 될 게 없거든요. 말 그대로 TMI가 되겠습니다. 어느 정도 감정의 공유가 됐을 때 조심스레 얘기해도 모자랄 판에, 연애초기에 이런 질문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함을 핑계로, 연인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일일이 자료를 검열하며 끊임 없이 의심하는 것도 비슷한 경우 같습니다.
아무리 연인이라도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서로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이프 온리에서 사만다와의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 이안이라는 주인공이 과거에 대한 질문을 하는 사만다에게 이런 말을 하죠.
‘과거야 아무렴 어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인데.’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현재는 서로가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값진 거 같습니다.

질문을 좀 바꿔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사람의 전 연애가 정말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면, ‘전 남자친구는 어땠어? 뭐하는 사람이었어?’라고 묻기보다, ‘연애를 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어? 가장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언제였어?’ 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상대방은 자연스레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그런 경험들을 얘기해준다면 그 사람이 행복한 순간을 자연스레 공유할 수 있고, 또 그 사람과 함께 하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며 더 큰 행복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믿어주며 연애를 한다면, 좀 더 굳건하고 건강한 사랑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안이 눈물을 흘리며 사만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루밖에 못 산다면 뭘 하고 싶어?’
그러자 사만다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하죠.
‘뻔한 걸 뭘 물어, 정답은 하난데. 자기랑 보내야지. 같이 있을 거야. 지금처럼’

E도 여자친구에게 그렇게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남자친구가 되길,
그리고 E의 여자친구도 E에게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자친구가 되길,
그렇게 E가 누구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연애를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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