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

3년째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느낀 점들

by 권민창

저는 원주에서 3년째 독서모임을 운영중입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다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8명 모인 자리에서 한 시간 반의 모임 시간 중 혼자 1시간동안 얘기하는 사람.
어려보인다고 초면에 상대방에게 반말을 하며 의견개진을 하는 사람.
독서모임에 관심 있다고 해서 만났는데 뜬금없이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
그리고 다양한 상황들 이를테면, 젠더이슈, 정치, 종교 같은 부분들이겠죠.
모임을 진행하고 중재하는 입장에서 젠더이슈나 정치, 종교에 관한 얘기는 항상 민감하고 힘듭니다.
처음엔 이성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나 싶어도, 어느샌가 감정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마막엔 서로 기분이 상해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 날은 독서모임이 끝나면 녹초가 되어 집에 와서 씻지도 못하고 잠들곤 합니다.
모임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거죠.
그래도 모임을 진행하는 덕분에 사람들을 마음 깊숙이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이 조금은 발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전에 독서모임에 30대 중후반의 D라는 여성분이 오셨습니다.
이 분은 굉장히 특별한 분이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나이가 제일 많으셨음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 대학생들에게도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모임 중에도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얘기하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얘기를 하셨습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아, 너무 좋은 얘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00씨의 얘기에서 이 부분은 굉장히 좋게 느껴졌습니다. 거기서 저는 약간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00부분에서 저는 이런 경험들을 해봐서요..'
라며 조심스레 의견을 개진했죠.
참 배려깊고 우아한 분이셨습니다.

1년 전이었을까요, 민감한 주제로 모임이 터진 날이었습니다.
다들 참전을 하는 상황이었고, 저는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다니며 휴전을 제의하고 있었어요.
제 편은 아무도 없었고, 너무 힘든 상황이었는데 D가 절 도와주더라구요.
'이 주제는 사실 조금은 민감한 주제인거 같아요. 답이 안나오는 거 같기도 하구요. 혹시 괜찮으시면 끝나고 같이 나눌 분들은 남아서
얘기하면 어떨까요?'
D의 이야기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렇게 몇 번 D의 도움을 받아 민감한 주제를 현명하게 넘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체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D는 참 젠틀했고.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분이 되게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서 몇 번 여쭤봤지만 끝내 웃으며 말씀은 안해주셨어요. 그런데 D와 독서모임에 함께 오신 지인분이 저에게 D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참 대단한 분이라는 얘기를 해주셨고, 저는 놀라기보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분이셨으니까요.

인생수업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우리의 진정한 힘은 사회적 지위나 넉넉한 은행 잔고, 번듯한 직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강인한, 그리고 고귀한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잘생기거나 이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말 한 마디가 한 마디에 자신감이 있되, 자만심은 결코 느껴지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주면서도 자기 주장은 확실하게 하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지고 알아가고 싶어집니다.
말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를 아는 것. 움직일 때와 움직이지 않을 때를 아는 것.
누구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싶죠. 내가 어떤 직장 다닌다, 얼마를 번다, 이성한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이걸 자기 입으로 얘기하면 되려 역효과입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게 해요. 언젠간 알게 된다는 걸 알거든요.
바다에 퇴적물이 쌓이듯, 그렇게 강인하고 고귀한 내면을 가지려면, 많은 경험과 연습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퇴적물을 쌓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 쌓이다보면 저도 D처럼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