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그릇
'아, 알았어요. 선배. 제가 알아서 할게요.'
2년 전쯤, 인생 고민이 있다고 조언을 들으러 온 직장 후배가 제 일장연설을 30분 정도 듣다가 질려 내뱉은 말입니다.
'선배, 저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이태로 살면 도태될 거 같지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조차 없어, 쥐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를 찾아왔을 겁니다.
후배가 봤을 때 저는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거 같아보였을 거예요.
직장생활을 하며 책도 내고 강연도 주기적으로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 당시 저는 말그릇이 굉장히 작았던 것 같습니다.
팩트폭력을 가장한 인신공격으로 후배의 기를 눌러버렸으니까요.
'야, 니가 그따구로 사는데 당연히 변하는 게 없지.'
후배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핑계로 '노오력이 부족해서'를 매크로처럼 반복하는 선배를 보며 후배는 분명 '꼰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어렵사리 연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다행히 지금은 다시 가까워졌지만, 그 이후로 후배와 굉장히 어색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발바닥에 난 상처에 마데카솔을 발라주고 새살이 돋았을 때 천천히 걸음마를 가르쳤어야 했는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 강해져야 한다!'라며 상처투성이인 발로 마라톤을 달리게 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럽고 미안한 경험입니다.
내가 뭘 잘 났다고 그 사람의 인생을 감히 재단했던 걸까,
왜 나만의 기준으로 그 사람의 인생에 점수를 매겼던 걸까.
아마 제가 그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대처는 '많이 힘들지?'라는 따뜻한 공감의 씨앗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후, 후배의 문제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함께' 도출했어야 했겠죠.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저도 조금씩 성장하는 거 같습니다.
최근에 일면식도 없는 후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제 글을 보며 너무 공감되고 힘이 나서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부족한 글인데 그렇게 느껴줬다니 고마워.
그만큼 후배가 따뜻하고 깊은 사람이라 그런 거 같아. 이렇게 훌륭한 후배가 있어서 참 행복하다.'라고 말했더니,
'말그릇이 정말 넓은 분을 찾은 거 같아 신기하고 영광이에요. 선배님 글을 읽으며 기운내는 후배들이 많다는 걸 알아주세요.'라고 대답해주네요.
문득 누군가에게, 자주 보진 못하더라도 생일이 되면 카카오톡으로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며 진심으로 생일 축하를 해주고,
때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깊은 고민도 공감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