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걘 집이 잘 살잖아. 나랑 상황이 다르니까.'

자존감이 낮은 이유가 '세상의 불공평함'일까?

by 권민창

‘닌 참 별나다. 부럽기도 하고. 우째 그런 결정들을 하고 사노.’

‘뭘요. 형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나는 두렵다. 자존감도 낮고. 내가 뭘 할 수 있겠노.’

최근에 같은 고향 출신 친한 형과 ‘자존감’에 대한 대화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흔히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자존감이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유복한 집안, 화목한 가정, 실패하지 않는 완벽한 선택들, 준수한 외모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만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자신이 자존감이 낮은 이유를 ‘세상의 불공평함’으로 돌리는 안타까운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걔는 집이 잘 살잖아. 나랑 상황이 다르니까.’

‘걘 잘생겼잖아. 뭘 해도 다 돼. 나랑 달라.’

저는 그런 분들에게 반문하고 싶어요.

‘그 능력치들을 다 타고난 어마어마한 행운을 가진, 선택받은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저 포함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자신만의 큰 문제들을 앓고 살아가요.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또래 아이들에게 외모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어떻게든 상처받은 ‘15살 아이’를 달래가며, 함께 가려 노력합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다른 부분으로 그 결핍을 채우려고 행동합니다.

행동함으로써 자존감을 조금씩 확보해나가요.

이 괴로운 과정을 견뎌내고 그 과정 중에 단단한 자아를 형성한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한 채 ‘타고난 행운 탓’으로 쉽게 돌려버린다면, 그것은 노력하기 버거워하는 내 모습을 회피하려는 아쉬운 태도가 아닐까요?

자존감이란 ‘넌 그 모습 그대로 소중해.’ ‘날 사랑해.’같은 일차원적인 자기암시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의 비교 속에 ‘객관적인 우위’를 선점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닌 거 같아요.

자존감은 내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며, 좋은 점을 극대화하려는 열정적인 에너지 속에 천천히 형성되는 거 같습니다.

타고난 것이나 주변 환경의 영향을 100% 받지 않을 순 없겠지만, 그것들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 그리고 그 관계에 있어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건강한 자존감을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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