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게 사는 방법
예전에 댄스동아리에서 활동했을 때, 성혁(가명)이라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성혁이는 누가 봐도 춤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어요.
같은 동작을 해도 느낌이 달랐고, 그 때 당시에 자주 즐겨보던 ‘얼반 댄스 캠프’에 나오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서들에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을 정도로 춤을 잘 췄습니다.
공연 때 K-POP 안무를 영상 보고 배우는 것도 벅찼던 저는, 성혁이가 비트가 괜찮은 팝송을 듣고 그 자리에서 그 팝송과 어울리는 안무를 창작하는 걸 보며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성혁이가 평생 춤만 추고 살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성혁이가 국내 최고의 댄서가 될 거라는 믿음에도 추호의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1년 정도 춤을 췄을 때였을까요, 성혁이가 돌연 춤을 추고 싶지 않다고 하며 팀을 나갔습니다. 팀원들은 다들 당황했고, 무슨 일인지 물어봤습니다. 그의 빛나는 재능이 너무나도 아까웠거든요. 저도 정말 아쉽게 생각하는 팀원 중에 한 명이었고, 며칠 뒤에 성혁이가 사는 동네 근처에 가서 성혁이와 커피를 마시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성혁아, 형은 니가 계속 춤 췄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기엔 니 재능이 아쉽잖아.’
그러자 성혁이가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형, 저는 춤을 추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몸으로 감정을 표현할 때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잘 춘다고 해주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니 조금씩 부담이 되기 시작했어요. 더구나 축제 때는 훨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완벽하게 해야 된다.”라는 강박관념이 생겼고, 그러니 더 이상 춤을 추고 싶지 않아졌어요. 안무를 습득할 때도 제가 좋아서 하는 거라기보다는 공연을 위해서, 축제를 위해서하다보니 저는 껍데기밖에 안 남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제 자신의 행복에 집중하고 있어요.’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인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키네시스적 인생이고, 두 번째는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입니다.
키네시스적 인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운동입니다.
시점과 종점이 있고, 시점에서 종점까지 이르는 운동은 가능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달성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면 급행열차를 탈 수 있다면 일부러 역마다 정차하는 보통열차를 탈 필요가 없는 거죠. 이 경우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정은 불완전합니다. 왜냐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반대로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은 목적의 완성보다는 실현해가는 활동에 초점을 맞춥니다. 다시 말해 실현이 되어가고 있는 상태, 과정의 상태에 있음을 뜻해요.
그러니 모든 순간이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가지는 겁니다.
성혁이가 춤을 시작했을 때는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을 살았을 겁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나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고, 땀을 흘리며 춤 자체를 즐기고 행복해했을 거예요.
하지만, 동아리에 들어가고 ‘공연’ ‘축제’ ‘사람들의 평가’라는 목적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생겨버리며 키네시스적 인생이 되어버린 거 같습니다.
공연과 축제까지는 시간이 얼마 없고, 그럼 최대한 내 감정을 살리기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아는 K-POP을 배우고, 내 개인시간보다는 목적을 가진 팀원들의 의견을 우선시했을 거예요. 그러다보니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고, 더 늦기 전에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 춤을 그만둔 거 같았습니다.
그 때 성혁이는. 못내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저에게 ‘형, 그래도 그냥 편하게 춤 추고 싶으시면 연락주세요.’라며 웃으며 얘기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 표정이 참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던 거 같습니다.
당시에는 이해가 잘 안 갔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성혁이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본연의 행복에 집중하고 ‘지금, 여기’를 살기 위한 큰 결정이었던 거 같아요.
최근에 창훈이라는 친구에게 ‘넌 인생의 목표가 어떻게 돼?’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창훈이가 ‘행복하게 사는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행복은 먼 미래에 있는, 지금은 잡을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키네시스적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먼 미래의 이상향으로 설정해놓고, 때가 되면 언젠가 잡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는데 공기가 왜 이렇게 맑은지, 비는 또 왜 이렇게 아름답게 내리는지, 편의점에서 산 1600원짜리 헤이즐넛향 아메리카노는 왜 이렇게 가성비가 좋은지, 6000원짜리 백반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지를 새삼 느끼며 즐기는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매순간이 축복이고 행복인 거 같아요.
남들에게 보여주는 그럴듯한 마침표를 찍는 목표지향주의가 아니라,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사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