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사람은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싫증을 잘 느끼는 편이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취미가 몇 가지 없습니다.
그 중에 참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취미가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독서입니다.
예전처럼 하루에 한 권씩 전투적으로 읽진 못하지만, 대중교통을 탈 때 꼭 가방에 한 권씩 넣어 다니며 야금야금 읽습니다.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지금 제 상황에 대입해 생각하고 느끼다보면 예기치 못한 깨달음을 주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렇게 5년 정도 이 취미와 습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독서가 저에게 ‘의무’가 아니라 ‘욕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어른들이 그렇게 독서해라, 독서해라 라고 했을 땐 책을 읽기 싫었습니다. ‘책을 안 읽어도 성공할 수 있어!’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다 책을 읽었던 건 아니야!’
정신승리도 하고, 본인들도 안 읽으면서 왜 나한테 잔소리하는 거냐는 괜한 반감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타이밍이 맞물려 좋은 시기에 좋은 친구가 좋은 책을 추천해줘서 깨달음을 얻었던 거 같아요.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한 끼 식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인생 음식이 되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의무’로써의 독서가 아닌, 순수한 ‘욕망’으로써의 독서를 자연스레 체득했고 그 후로 저에게 책은 ‘읽어야만 해’라는 숙제의 느낌보다는, ‘쉬면서 책이나 읽고 싶다.’라는 놀이의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게 됐습니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의무로써 혁명이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혁명은 의무가 아니라 욕망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주장은 유사 이래 존재했던 혁명은 본질적으로 욕망이고, 또 욕망된 것이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입니다. 쉽게 말해 세상을 바꾸었던 혁명은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너무나 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능했다는 이야기예요.
‘천재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즐기는 사람은 이긴다, 진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비교하는 순간 그것은 ‘의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동기부여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지,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달리기를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평생 다리를 움직이고 싶지도 않을 겁니다.
본인이 스스로 움직이며 아쉬움과 간절함을 느껴야 할 시기가 아닌데,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그렇게 된다면 욕망이 아니라 의무로써,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고 조언하는 태도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면 지양해야 되는 거 같아요.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욕망’을 갖고 살고 있을 거고, 또 다른 기회를 간접적으로 제공해주면 됩니다. 그 기회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겠죠. 상대방이 결코 ‘의무’로 느끼지 않게 말입니다.
자연스레 체득된 ‘욕망’은 지속한다, 견딘다의 개념이 아니라 행복하다, 기쁘다의 개념으로 우리의 인생에 자리 잡아, 우리의 삶을 훨씬 더 다채롭게 만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