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는 삶을 마치는 날 휴지통에 들어가 눕는 꿈을 꾼대

눈에 보이게 말하기

by 권민창

'휴지는 삶을 마치는 날 휴지통에 들어가 눕는 꿈을
꾼대요.'

지나다니거나 책을 보다, 참신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편입니다.

1.아파트 코앞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오게 되는 경우는 집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민들이 현수막을 만들어 붙입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파트 코앞에 초고층빌딩이 웬 말이냐! 시민의 삶 짓밟는 00는 각성하라!'
같은 투쟁적이고 공격적인 문구를 생각할텐데요,

카피라이터 정철씨는 이 문구를 이런 식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햇볕을 받고 자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주세요.'

투쟁에는 투쟁으로 맞서기보다, 투쟁을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 거죠.

2.오늘 서현 영풍문고에서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을 읽다 배가 아파 화장실에 들어왔습니다.
여지없이 문에 경고문 비스무리한게 붙어있었습니다.
'보나마나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리세요.'같은 강압적이고 뻔한 경고문이겠지.'라고 생각하고 우연히 그 문구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휴지는 삶을 마치는 날 휴지통에 들어가 눕는 꿈을 꾼대요. 휴지의 꿈을 이뤄주세요.'

그 상황이 상상되며,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휴지의 꿈을 좌절시켰는가라는 생각에 죄책감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강압적이고 뻔한 워딩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서 동요를 불어일으킬 수 있는 상상을 하게 해주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친한 친구가 '요즘 진짜 힘들어.' 라고 했을 때,
'누구나 그러는 거야. 좀만 참아.'라고 하기보다

'우리 민창이, 4년 전에 제주도에서 술 진탕 마시고 바닥에 토했을 때가 생각나네. 그 때 내가 진짜 힘들었는데ㅋㅋ 새캬 장난이고. 넌 그 때이후로 나한테 항상 자랑스럽고 소중한 친구다. 내성발톱 때문에 힘들단 얘기만 아니면 다 들어줄게. 요즘 뭐 때문에 힘들어?'

눈에 보이게 말하고, 그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것.
우리의 삶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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