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배려로 치환하기
어제 복잡한 퇴근 시간, 정자역 신분당선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고 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연스레 사람들이 장애인 개찰구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카드를 찍으러 개찰구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전동휠체어를 탄 할머니 한 분이 보였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할머니를 위해 만들어진 개찰구인데, 다른 사람들이 그 개찰구를 이용하고 할머니는 꼼짝 없이 옆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분명 눈에 띄는 자리에 계셔서 장애인 개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중요한 소개팅이나 집안 행사가 있는 것처럼 그 할머니의 존재를 본 체 만 체 하며 카드를 찍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부끄럽고 불편하지만, 몇 초만 참으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다라는 잘못된 이기주의의 발로겠죠.
결국 저는 그 자리에서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개찰구를 다 통과하고서야 천천히 카드를 찍고 들어오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쓸쓸하고 무거워 보이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장애인 개찰구를 멋대로 이용한 사람들이 너무 미웠습니다. 그렇게 역으로 올라와서 집까지 걸어가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기적인 걸까?’
‘내가 가서 한 소리를 했어야 했나? 그런데 난 그럴 용기도 없고..’
그런데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저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릴 줄만 알았지, 할머니에게는 관심이 없었구나.’
그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데만 혈안이 되어있었지, 정작 그 과정을 겪은 할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했던 게 생각나며, 할머니에게 굉장히 죄송스러웠습니다.
정지우 작가의 ‘분노사회’라는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만성적 분노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늘 분노의 씨앗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고 하거나,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거나, 자기 정체성의 수립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이 세계 전체가 절망으로 가득 차있다는 신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저는 그 상황에서 분노라는 감정에 휩쓸려, 정작 제일 중요하고 소중한 ‘공감’이라는 감정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사람들을 응집시키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때, 잘못된 일을 한 대상에 대한 분노로 인해 정작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