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에 나이 묻지 마라.
영어를 배워서 좋은 점은 수직이 아니라 평등에 의거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sir이나 ma'am같은 표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존대가 없기에 더 스스럼 없이 상대방을 알아갈 수 있는 거 같아요.
함께 수업을 듣는 'Taylor'는 아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만일 Taylor를 영어학원이 아니라 사회에서 만났다면, 저는 당연히 큰 형님으로 모시거나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을 거고, 심지어 그와 있는 자리가 굉장히 불편했을 겁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하다보니 'Taylor'가 너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Taylor'도 그런 저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영어로 각자의 고민이나 있었던 일을 나누는 수업이 있습니다. 'Taylor'는 아들의 결혼 문제, 60세 이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제게 털어놓습니다.
처음부터 큰 형님과 동생으로 만났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겠죠.
한 때는 나이로 서열을 나누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드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습니다.
초면에 나이를 묻고 형 노릇, 오빠 노릇, 동생 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이로 관계를 설정해버리면
나보다 연장자에게 무언가 말하기가 쉽지 않고,
또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조언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아요.
어쩌면 지금까지 나이에 가려서 상대방의 진솔한 모습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달 전,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원어민에게 자연스레 'How old are you?'라고 질문했었습니다.
그러자 원어민은 그 질문은 무례한 질문이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3달 정도 그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보니 자연스레 이 문화가 받아들여졌습니다. 사회적 호칭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스스럼 없는 친구가 되더군요.
지금까지 나이나 배경에 가려 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에서는 100% 솔직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던 거 같아요.
아직도 부족하지만,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무례'이고 '불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관계에서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인사이트를 받았던 적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관계의 시작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입니다.
나이라는 장벽에 막혀 예의나 격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건강한 가치관을 마음껏 공유하며 성장하는 관계가 많아지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