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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Sep 14. 2019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췄을 때 공감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눈 맞추기

친한 형의 아들이 있습니다.
곧 4살이 됩니다. 비요뜨를 좋아하구요. 여느 또래들처럼 볼살이 많고 머리가 큽니다.

저는 사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번씩 '아기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사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얼버무렸던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보통 돌발질문에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하는 편이지만
“아기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는 도저히 잘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그 질문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요.


며칠 전, 형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너무 미안한데 1시간 정도만 아이를 봐 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런 부탁을 잘 안하는 형이라 꽤나 난감한 상황이구나 라는 걸 직감했고 흔쾌히 그러겠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형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아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아빠가 지금 내 곁을 떠나려 한다는 것과, 일면식도 없는 삼촌과 꼼짝없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형의 눈빛이 애처롭습니다. 아이를 낯선 사람에게 맡긴다는 미안함이겠죠. 저는 그렇게 아이와 1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 전엔 육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어요. 사촌누나 애기도 많은 이모들과 이모부들,
그리고 사촌동생들이 돌아가며 봐줬으니까요. 그러니까 간접적인 육아는 제게 '선택'의 개념이었던 겁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그런데 며칠 전의 상황은 제게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제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각오하고 갔지만, 상황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심각했습니다.
코코몽도 보여주고 뽀로로도 보여주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봤지만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계속 울었어요.

30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그렇게 어르고 달래다 지친 저는 아이에게 “아빠 보고 싶지?” 라고 물었습니다. 왜 그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딱 그치고 '네!'라고 하며 제 쪽으로 손을 뻗었어요. 안아달라는 의미였습니다.

타이르고 달래는 것도 먹히지 않았는데,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줬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율이가 제게 안겼을 때, '아, 이게 육아의 행복이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55분이 지옥 같아도 5분이 무엇보다 값지더라고요.

어린 율이는 답답했을 겁니다. 아빠도 보고 싶고, 엄마도 보고 싶은데 옆에 처음보는 삼촌은 도통 자신의 맘을 헤아려주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삼촌이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주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얼어붙었던 경계의 벽이 허물어진 거 같았어요. 마침 그 때 아빠가 왔습니다.

“민창아, 너무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형은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제게 말합니다. 저는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했어요.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소중함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구요.

집에 가기 전에 아이가 뽀뽀를 해줬어요.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심 자기 투정 받아준 제가 고마웠나봅니다.


돌아보니 나만의 잣대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훈계만 했지, 공감하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와의 에피소드로 인해 저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됐고 중요한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아이의 부모님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참 선하고 깨끗한 부부에요. 아이도 그렇게 바르고 선한 어른으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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