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찜닭과 기본 찜닭
최근에 친한 동생과 사당역 근처에서 찜닭을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식당이 한산했고, 둘 다 치즈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기에 기본 찜닭을 시켰어요.
주문하면서 사장님이 '치즈 안 먹고?'라고 얘기하셔서,
'네, 그냥 찜닭이요. 치즈 별로 안 좋아해서요!'라고 얘기를 한 번 더 드렸습니다.
그런데 15분 뒤 나온 찜닭은 기본찜닭이 아니라 치즈찜닭이었습니다.
'어, 사장님. 저희 기본 찜닭 시켰는데..'
라고 하자 사장님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입니다.
'치즈찜닭이라고 하지 않았나?'
동생과 저는 동시에,
'아, 저희가 치즈 별로 안 좋아해서 빼달라고 말씀드렸었는데..'
그러자 사장님은 다시 한 번 눈이 흔들리며,
'아닌데.. 분명 치즈찜닭시켰는데..'라고 얘기하십니다.
저희도 딱히 가리지 않아서 치즈찜닭을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지만, 2번이나 들으셨으면서 끝까지 인정을 안하시는 사장님의 태도에 그렇게 기분이 좋진 않았습니다.
'아, 사장님 그냥 먹을게요. 괜찮아요.'
그러자 사장님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치즈 찜닭을 많이 시키더라고..'
하면서 주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실, 별 문제 될 상황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저나 동생이나 예민한 성격도 아니고, 치즈찜닭보다 기본찜닭을 더 좋아할 뿐이지 치즈도 맛있게 먹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본인이 잘못 들었다라고 인정하시지 않으시고 다른 얘기를 하시니, 이 사소한 문제가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질 뻔 했던 거 같습니다.
제가 만약 사장님의 상황이었다면,
'미안해요. 내가 요즘 정신이 없네.
그런데 이미 요리가 된 상황이라 기본찜닭 가격만 받을테니 치즈찜닭 한 번 먹어보는 건 어때요? 우리 가게 치즈 찜닭이 진짜 잘 나가요. 치즈 알러지 있는 사람들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는다니까.'
라고 얘기했을 거 같아요.
사장님이 실수를 인정하고, 적당한 보상책을 내놓으며 유머러스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면 서로 웃으며 끝났을 거 같습니다.
사장님이 배달을 가시자 안에 계시던 다른 분이 나오셔서 사이다를 주십니다. 사장님의 아내분 같았어요.
'아이고, 주문 잘 못 들어갔는데 별 불평 없이 맛있게 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거는 죄송의 의미로 서비스예요. 그리고 가격은 기본찜닭 가격만 받을게요. 다시 한 번 죄송해요.'
약간의 찝찝함을 갖고 갔던 저와 동생도 그제서야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래, 치즈면 어떻고 기본이면 어때. 맛있게 먹으면 되지.'
찜닭을 맛있게 먹고 나와서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대처를 보여줬던 사장님과 사모님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요즘 들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되게 큰 용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연락을 하거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사과할 줄 알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들인 거 같아요.
내가 잘못했다고 느낄 때는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나의 감정을 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습니다.
'미안하다.' '그건 내 실수야. 얘기해줘서 고마워.'
라는 말을 하는데는 2초도 안 걸리지만, 그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은 여러분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누군가와 문제가 있고, 그게 내 잘못인 걸 알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감정싸움을 하고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보시면 어떨까요? 상대방도 여러분의 손을 잡을 거고, 자존심보다 훨씬 더 소중한 인연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