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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Feb 17. 2020

너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지 마세요.

사당역 버스

최근에 사당역에 있는 연습실을 가려고 네이버 지도를 켰습니다. 네이버 지도를 보면 최단거리, 최단시간, 그리고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남은 시간이 다 뜨거든요. 그런데 집 앞에서 사당역까지 가는 빨간 버스가 5분 뒤에 도착한다고 나온 겁니다. 여유롭게 옷을 입고 있다, 갑자기 급해져서 집을 나왔습니다. 신발도 구겨 신은 채로 버스정류장까지 절뚝거리며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 가는 중간에 신호등이 있는데, 원래는 그런 생각이 안 드는데 그날따라 신호는 왜 그렇게 안 바뀌는지.. 마음은 조급해지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타야하는 버스가 제 눈앞에서 지나갔습니다. 제가 그 버스를 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진 겁니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사실 항상 여유를 가지고 집에서 출발하는 편이라, 다음 버스가 15분 정도 뒤에 오더라도 약속시간에 전혀 문제될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신호등이 바뀌었습니다. 여유롭게 신호등을 건넌 뒤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습니다. 그리고 버스가 오기 전까지 아아를 마시며 여유롭게 노래를 들었습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컵을 버리고 몇 분 정도 있으니 버스가 왔습니다. 자리도 여유가 있어 편하게 앉아서 사당역까지 갔었어요. 


주변을 돌아보면, 조금 여유를 갖고 살아도 될 거 같은데 자신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발을 제대로 신고, 신발 끈을 동여맬 시간도 충분한데 굳이 신발을 구겨 신고 목표를 향해 절뚝거리며 뜁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가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기 위해 말이죠. 사실 조금 늦는다 해서 문제될 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신발 끈을 동여매고 가는 게 장기적인 레이스에서는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가짐도 급하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사고가 나기도 쉽습니다.

신발을 구겨서 신었기에 발목이 꺾일 확률도 있고, 버스를 빨리 타기 위해 무단 횡단을 하다 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도 예전엔 그렇게 살았던 거 같아요. 무언가를 성취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내 자신을 칭찬해줄 여유를 가질 새도 없이, 다음에 해야 할 것들을 급히 했던 거 같습니다. 최소 환승, 최단 시간만을 고집했던 거죠. 하지만 그게 결국 저 스스로에 대한 강박으로 돌아와서 많이 힘들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서야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됐고,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살았던 거 같아요.

다음 버스가 꽤 오랜 시간 뒤라면, 5분 일찍 준비를 하거나 신발을 구겨 신고 무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버스가 지금 버스와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너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고 힘들게 한다면,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이 한 없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무리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늦지 않은 시기에 다음 기회가 있다면, 여유롭게 다음 기회를 준비하시면 어떨까요? 제가 다음 버스를 타서 여유롭게 앉아갔듯, 또 다른 좋은 순간이 여러분에게 찾아올 수도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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