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창 Jul 11. 2018

아픔이 길이 되려면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가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1. ‘귀하는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다.
질문 참여자는 ‘예, 아니오, 해당사항 없음.’의 3가지 대답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항목은 말 그대로 아직 구직 경험이 없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항목.

그런데 질문 참여자중 약 4%에 해당하는 직장인들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대답했다. 이미 취직한 사람이라면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예’나 ‘아니오’로 대답해야 하는데 왜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것일까?

2. 1966년 루마니아의 국가원수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낙태금지법을 시행한다. 그 조치는 루마니아의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기인했다. <Decree 770>이라고 불리는 낙태금지법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을 통한 임신과 의학적으로 산모의 생명을 위협하는 임신, 이미 아이가 4명이 있거나 산모의 나이가 45세 이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금지시켰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 혁명으로 폐기될때까지 <Decree 770>은 루마니아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루마니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최소 4배, 최대 10배 이상까지 출생아 10만 명당 모성 사망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일까?

3.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금연에 실패할 경우, 그 원인은 개인의 금연 의지 부족일까, 아니면 금연 의지를 좌절시키는 위험한 작업환경일까?
작업환경자체가 담배보다 건강에 좋지 않다면 굳이 금연프로그램을 진행할 당위성이 있을까?

4. ‘2014년 전공의 근무환경 조사’에 따르면 인턴은 주당 116시간, 레지던트 1년자는 103시간의 근무시간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중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언어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 그들이 누군가를 온전히 치료할 수 있을까?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더 자주 아프다.

실업과 재취업 정책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 나라는
해고로 고통 받다 자살하는 노동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경제위기 때 복지 예산을 축소하는 사회에서는 치료가 어렵지 않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허리가 아파도 병가를 쓸 수 없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바로 옆 건물 병원의 의료기술은 그림의 떡이다.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인간의 몸을 병들게 하는지에 대한 논문을 읽고 성소수자, 소방공무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만나고 그들의 건강에 관해 연구하며 글을 쓰면서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주요한지에 대해 얘기한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한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때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작가의 마지막 말로 서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가요?’

작가의 이전글 진실을 보는 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