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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Jun 01. 2020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더 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갈등에서 나는 어떤 걸 느끼는가.


최근에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와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게 만든 다툼의 이유는 사소한데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전에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았던 사소함들이 쌓였습니다.
헬륨이   풍선처럼 바늘로 살짝  건드리면 터질  같은 그런 위태함 속에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던  같아요.

처음엔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아닌 걸로 그렇게 화를 내고 연락을 계속해서  받는 친구가 정말 미워지더군요.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억울함' 입증 받고 싶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그래, 그건 아니지. 내가 봤을  니가 잘못한  없는  같은데?'라고 했습니다.  말을 들으면 후련해졌어요.

그런데  때뿐이었습니다. 어지러운 감정들이 계속해서 생겨났고, 누군가에게 친구와 저의 관계를 얘기하면 할수록 공허해지고 두려워지더군요.

   자신에게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했던  같아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객관적으로 내가 잘못한  없네.'라는 주변인들의 인정보다는  친구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걸요.

가짜 감정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보통 화가 나면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낱낱이 분석해 상대방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에 집중하며 화를 증폭시킨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화에 대한 책임을 미루면 상대방과의 갈등은 피할 수가 없고, 이런 갈등으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이 새로 발생한다.'

저도 항상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고,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기준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때면  감정을 찬찬히 돌아보고 대화로 풀기보다 더욱 크게 화를 냈어요.

그리고 그게 기준을 넘은 사람이 응당 받아야하는 대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화의 원인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결국 화를 내는   자신이고, 화를 낸다면 스스로에게만 손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을   며칠 , 거짓말처럼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조금 어색하지만 만나서 그간의 쌓였던 감정을 조금씩 녹일  있었던  같아요.

남의 잘잘못 따지는 행위나 뒷담하는 행위는  때만 좋지, 뒤돌아서면 공허하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듭니다.

누군가와 갈등이 있다면,  갈등의 잘못이 누구에게   지를 따지기보다는  갈등에서 본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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