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갑시다
집에서 300m만 가면 있던, 자주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썼던 OLE 카페가 최근에 문을 닫았다. 커피의 맛보다, 사람들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의 비중이 더 큰 개인카페 특성상,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치명적이었을 거 같다.
테이크 아웃만 한다면 굳이 개인카페를 가기보다, 저렴하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는 게 나으니까.
그래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31년간 촌놈으로 살다, 처음으로 서초구민이 되어 으스대며 친구들에게 ‘교대역 1번 출구에서 3분 정도 걸어오면 OLE 카페라고 있거든. 임마 올레 아니고 올리 올리! 그래. 거기서 보자. 오면 나갈게.’라고 말하고 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사장님과 알바생들은 친절했고 매번 사람이 많아, 이렇게 급작스럽게 닫을 줄 몰랐기에 공고문을 본 뒤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누가 그랬다. 추억이 담긴 물건은 버리지 못한다고. 카페 올리는 나의 강남 생활의 시작을 함께 한 친구였다.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내가 처음으로 서초구민이라는 존재감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곳.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갔고 씁쓸했나보다. 우리 집에 한 번이 아니라 두 세 번 이상 온 지인들은 나에게 먼저 ‘카페 올리에서 보자.’라고 얘기할 정도였으니.
커피가 맛있고, 분위기 있으며, 깔끔했던 곳. 그래서 누군가를 초대하기에 전혀 거리낌이 없던 괜찮은 동네 카페의 폐업 공고문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자유로워 보이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많고 생각이 많다.
‘글 잘 보고 있어요. 좋은 글 써줘서 감사합니다.’라는 응원의 메시지에 벅차오르는 행복을 느끼다가도, 금전적인 문제로 꽤나 자주 스트레스 받고 답답함도 많이 느낀다.
그러다 한 번씩 별 생각 없이 일해도 꼬박 꼬박 월급이 나왔던 직장인 시절을 떠올렸다가도 금방 손사래를 치는데, 그냥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지질해보여서 또 짜증 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되고 답답한 일들보다, 행복할 때가 더 많기에 계속해서 글을 쓴다. 예전에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저는 불행이 디폴드값인 거 같아요. 불행한 상태에서 가끔 행복을 느끼는 거지,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그 때 당시에는 아니라고,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나름의 변론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불행은 디폴트값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만 순간 순간 번뜩이며 찾아오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불행을 참으며 견디는 것. 마치 놀이기구처럼.
누군가에게는 소통의 창구,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 누군가에게는 친구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전 담금질을 하는 장소가 되었던 카페 올리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지겠지. 오랜만에 오는 사람들도 불 꺼지고 공고문 붙어 있는 올리를 보고 짧게 아쉬움을 내뱉고는 다른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겠지.
그러나 내 글은 달랐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아도,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힘을 받고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작은 위로를 받고, 또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동기부여를 받아 무언가를 해내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래도록 가늘고 길게, 누군가의 입방아에 내 글이 긍정적으로 묘사되어 오르기를.
버티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함을 몽글 몽글 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