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평범함_나의 임신, 출산 이야기
첫번째. 시험관 시술 1차
- 아기를 갖기로 마음먹다.
어느덧 나이가 40세에 접어들었다. 이제 나라에서 만 나이를 쓴다고해서 겨우 만 나이로 30대의 마지막 해. 노느라 정신 팔려 신나고 즐거운 결혼생활로 임신을 미룬 것도 있고, 남편이 담배를 끊어야 아이를 낳겠다고 선언한 바 있어서 여태 버티다가, 평생 안 낳을 거 아니면 이제는 정말 아기를 가져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의학적으로 노산이라는 35세는 진즉에 지났고, 지금 일단 내 몸이 임신하기에 적합한 상태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친구가 2년 전인가 알려줬던 난임으로 유명한 세 군데 병원 중에 집에서 제일 가까운 난임센터로 가기로 했다.
- 생각보다 힘든 이식 전까지의 과정.
힘들다는 말만 들었지, 시험관 시술로 수정란을 심기까지는 정말 많은 검사와 약과 주사와 시술과 비용이 필요했다. 먼저 생리 2일 차에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호르몬 수치등이 정상인지 혈액검사로 확인하고, 심전도 검사, 초음파 검사, 자궁난관조영술(자궁으로 조영제를 넣어서 나팔관 등 기능에 이상이 없는지 X-ray로 확인)을 진행했다. 갑상선 수치 때문에 일주일 후 방문에 갑상선약이 처방됐다. 남편도 가능한 날짜에 예약해서 정액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둘 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난소나이가 이팔청춘도 아니었고 생물학적 나이가 나이니만큼 배란주기, 인공수정 등 건너뛰고 바로 시험관으로 가기로 했다. 결혼한 지 10년째인데 아직 아기가 없는 건 맞으니까. 그리고 다음달 외래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주사들이 처방됐다.
일단 과배란으로 난자를 왕창 뽑아서 정자와의 단체 미팅을 성사시켜야하니 배란을 촉진하는 주사를 맞아야했다. 고날에프, 아이브이에프엠을 맞았는데, 동결건조된 약제가 든 병에 식염수를 뽑아 넣고 섞어서 맞는 형태라 처음엔 헷갈리기도 하고 어느날은 시간 맞춰 헐레벌떡 집에 와서 주사를 놓다가 약 섞는 걸 까먹고 식염수만 맞은 날도 있었다. 세상 큰일나는 줄 알고 엄청 당황하고 속상해했지만 다행히 과배란은 잘 이루어졌다. 다음 외래에서 초음파실 선생님, 주사실 선생님한테 나 이런 실수했다고, 너무 걱정했다고 얘기하니 마음의 안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 번 그런 걸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하셨다.
과배란 주사를 시작하고는 거의 3일에 한번씩은 병원에 가서 초음파로 난포가 잘 커지고 있나 확인했다. 한번은 냉이 너무 많아져서 난포가 터져버린거 아닌가 너무 걱정돼서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호들갑 떨었지만 그런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 첫 채취.
2월 첫날 처음 병원에 갔었고, 3월 마지막주. 드디어 난자와 정자를 채취했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 그런가 난포가 거의 스무개 가까이 부풀었고, 미성숙난자를 포함해서 24개가 채취됐다. 그 탓에 양쪽 난소가 각각 주먹 크기로 땡땡 부어서 복수가 생겼고, 배가 너무 불편하고 아파서 며칠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알부민 수액을 맞고나서야 회복됐다.
그렇게해서 채취한 난자와 정자로 수정을 시도, 수정란은 17개가 나왔다고 며칠 후 어플에서 조회됐는데 5일, 6일 배양에 성공해서 동결까지 간 수정란은 단 3개였다. 수정란은 겉보기로 등급을 따지는데, 나의 소중한 배아는 5일 배아가 4BB, 4BC, 그리고 6일 배아가 4BC라고 했다. A가 들어가야 좋은 등급인데 아주 상급은 아닌거였다. 어쨌든 겉보기의 등급이니 이 세개를 이식해보자 하고 모두 얼려뒀다.
이제 이식을 위한 딱 좋은 자궁벽 두께를 만들어야 하는데, 약간 두껍기도 하고 이식에 제일 적당한 모양새를 만들기 위함인지 자궁경을 하자고 하셨고, 4월 중순쯤 난자채취때처럼 수면마취를 하고 자궁경 시술을 받았다. 뭔가 자궁벽을 깨끗하게 다듬는다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조직검사를 하니 용종이라던가해서 결과적으로 시술받길 잘했네 했다.
- 드디어 첫 이식.
모든 준비가 완료됐고, 6월 첫째주. 드디어 이식을 완료했다. 이식하는 날은 마취도 안했고해서 오후엔 집에와서 밀린 업무처리도 하고 평소처럼 지냈다. 그리고 10일 후 1차 피검. 수치가 애매했다. 15였나.. 아주 포기하긴 애매했고, 피검날 예정되어 있던 회사 동호회 1박 2일 골프 여행을 강행했다. 신나게 가긴 갔는데 막 뛰고 휘두르긴 겁나서 맘껏 놀지도 못하고 스코어도 당연히 망. 저녁엔 하필이면 메뉴가 회였다. 날것이라도 위생적인 가게라면 먹는데 문제가 안된다고 했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매운탕만 몇 숟갈 먹고 말았다. 수치가 나오긴 했으니 술을 마실 순 없어서 음료수만 마셨는데, 다들 어디 아프냐, 무슨 일 있냐 물어봐서 결국 술자리에서 몇몇 사람한테는 ‘시험관 하고 있다’ 얘기했다.
그리고 놀러 갔다 온 다음날, 두근대는 마음으로 2차 피검을 받았다. 통과라면 주사를 더 처방받아야 했어서 병원 근처 스벅에서 카페인 없는 차를 마시면서 한 시간쯤 있었을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치는 한자릿수. 하하. 남은 차를 버리는 곳에 털어 넣고 집으로 와버렸다. 그럼 그렇지. 한번에는 안되는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