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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빵떡 Aug 05. 2024

특별한 평범함_나의 임신, 출산 이야기

열다섯번째. 할 수 있는 일

- 모유가 나온다.

어제 그렇게 아기를 낳고나서 산후조리원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만삭으로 낳은것도 아니고 아기도 없이 혼자 가야하는데 조리원에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럴 수 있나. 남편은 그래도 출산을 하긴 한거니까 좀 쉬다가 나오라고 했지만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다른 예쁜 아기들도 있을거고 응애응애 우는 소리도 들을텐데 괜히 마음만 상하는거 아닐까? 딱히 조리할 것도 없지 않을까 해서 산후조리원은 안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다 일반 병실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모유 짜는 방법, 모유 보관팩에 담아 NICU에 전달하는 방법 등이 담긴 설명서를 주시며 가볍게 마사지를 해주셨다. 놀랍게도 유즙이 나왔다. 모유가 빨리 도는 편이라며 신생아중환자실에서도 아주 적은 양이라도 모유를 갖다주면 먹이겠다고 했다. 미숙아 분유가 있긴 하지만 아기들이 아주 이른 주수에 나왔기 때문에 모유를 주는 것이 괴사성 장염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고, 이른 주수에 출산을 하게되면 아기에게 주지 못한 영양소가 모유를 통해 전달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3주에 낳았지만 모유가 돈다는 것도 신기하고 필요한 영양소가 딱 맞게 나온다니 인체의 신비로움에 놀랐다. 그리고 NICU에 입원한 아기들을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니. 조금은 기쁜 마음으로 다시 산후조리원에 가기로 했다. 가서 일주일동안 유축하는것만 제대로 배워오자.

병실로 전달되는 산모식 미역국이 갑자기 엄청 맛있어졌다. 전부 다 먹고 모유를 열심히 짜서 갖다줘야지. 하루 세끼에 야식까지 꽉찬 밥 한그릇에 넘치도록 담긴 미역국을 후루룩 후루룩 열심히 먹었다. 이 병원 미역국 잘하네. 매 끼니 똑같은 소고기미역국인데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 그 동안 누워있느라 물 한모금도 역류하는 탓에 잘 먹지 않았고 배가 커져서 눌린 장기가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다고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열심히 먹지 못했는데 아기들이 나오고나니 밥 한그릇이 가볍게 들어갔다. 열심히 먹자.

한 뚝배기 가득한 미역국. 맛은 있었어.


- 젖몸살.

병원에서 준 안내서를 보고 모유야 나와라 하면서 가슴을 열심히 문질러댔다. 신기하게도 한방울 두방울 똑똑 흘러나왔다. 쿠팡으로 주문한 모유 보관팩을 서둘러 열어서 한방울 한방울 소중한 모유를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령이 없어서인지 노력에 비해서 양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어차피 당장 먹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먹어도 1cc부터 먹일테니 양이 아주 모자라진 않을거다. 계속해서 짜야 젖이 마르지 않고 계속 나온다고해서 2~3시간마다 계속 안내서를 펼쳐놓고 모유를 짜냈다.

야식까지 나온 미역국을 야무지게 먹고 자는데 어라? 가슴이 아프다? 어느쪽으로 누워도 가슴이 눌려서 아프고 단단하게 뭉친 것처럼 만지는 것도 닿는 것도 불편해졌다. 열심히 마사지를 했더니 하루만에 모유가 많이 생성됐나보다. 아프지만 젖이 많다는거겠지 하면서 한방울씩 더 열심히 짜댔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마사지한 곳이 죄다 멍들어있었다. 간호사 선생님한테 보여드리니 헉 이렇게 세게 안하셔도 되는데! 하며 안타까워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원래 초유는 나오는 양이 적기 때문에 한방울 두방울씩 나온다고해도 조급해할게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억지로 짜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유축기를 빌려서 사용할 수는 있는데 공용으로 비치할 목적으로 둔거라 그 유축기로 짜낸 모유는 위생때문에 모으지 못하고 버려야하니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도 나중에 알았는데 원래 초유는 손으로 짜는게 더 효율이 좋은거였다. 안내서에 나온 그림과 설명으로 따라하기에 손유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모유 마사지 전문가에게 물어보고나서야 정확히 방법을 알게됐다. 병동 간호사 선생님도 모유 전문가였는데 진작 물어볼 걸 그랬다. 모유는 초반 골든타임이 중요한데 모유 양을 늘릴 수 있는 시간을 아깝게 버린 것 같아서 나중에서야 좀 후회되었다.

그래도 육아 책에서 본 것처럼 진짜 심한 젖몸살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데 이것마저 못하게 되면 안되지. 밤늦게 모은 작지만 소중한 모유팩을 손에들고 산부인과 병동과 같은 층에 있는 니큐 초인종을 누르고 모유를 전달했다. 이게 뭐라고 엄청 뿌듯하네. 열심히 해보자!


너무 적지만 너무 소중한 내 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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