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번째. 너무 이른 만남
- 분만.
진통이라는걸 알게되고나서일까 아니면 때가되서일까. 5에서 6정도였던 통증이 8~9이상 느껴질 정도로 심해졌다. 서있다면 발을 동동 굴렀을 것 같은, 너무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고통이 계속됐다. 분만실에서부터는 핸드폰을 쥐고있지는 않아서 몇분 몇초 간격으로 통증이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길어야 1분이었던 것 같다. 정말 너무 아파서 정신을 못차리겠고 너무 더워서 머리와 목덜미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분만실로 옮긴지 오래되지 않아 맥수술로 묶은 실을 잘라냈고, 확인을 위해서 의사와 간호사가 꺼낸 매듭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몇번의 내진. 계속되는 진통은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만들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너무 아팠다는 것 뿐이다. 분만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만해도 조금이라도 더 버텨야한다 생각했던 나란 인간이 너무 간사하다 생각될 정도로 너무 아파서 당장이라도 꺼내주세요 외치고 싶을만큼 너무 아팠다.
대변을 보고싶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몇분이 흘렀을까.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느낌이 든다고 말하고나서도 계속 너무 아파서 아파요, 너무 아파요 하면서 옆에 있는 남편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정말 때가 되었다. 분만실로 의료진이 모두 모였고 누워있던 베드가 분만을 위한 모양새로 착착 접혔다. 시작이구나. 쌍둥이고 둘 다 머리가 위로, 다리가 아래에 있는 역아였지만 이미 진통이 시작됐고 경부도 열렸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은 질식분만, 흔히 말하는 자연분만을 하기위한 준비를 하셨다. 아기가 하나였어도 제왕절개 하려고 했는데. 역시 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구나.
담당 선생님은 내진으로 상황을 보고 힘을 주어야 하는 타이밍을 계속 알려주었다. 혹시나 혹시나 나중에 담당 교수님이 자연분만 할 수 있다고 하면 한번 고려해볼까 하는 생각에 유튜브에서 영상을 딱 한번 찾아봤던게 다인데 갑자기 정말 자연분만이라니. 아픈 와중에 기억나는건 힘주면서 아프다고 아악 소리지르면 정작 힘 주어야할곳에 힘이 안들어간다고, 소리는 지르지 말고 몸을 웅크리면서 배 쪽을 바라보고 힘을 줘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힘주라고 할때 열심히 힘을 주었고, 참을 수 없는 진통이 계속되었다. 남편이 땀에 절어 있는 내 뒤통수를 받쳐주고, 그 손에 기대어 계속 힘을 줬다. 최선을 다해야 빨리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 열심히 힘을 주며 20분쯤 흘렀으려나. 아기가 쑤욱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23시 38분. 연말이가 나왔다. 그리고 계속되는 진통과 힘주기 끝에 23시 42분. 정산이도 쑤욱 나왔다.
갑자기 모든 고통이 씻은 듯 사라졌고, 아마 좀 쉬게하기 위한 진정제나 약한 수면제 같은 걸 맞았던 것 같다. 얼마 후 약기운에서 깨어나고 남편한테 아기들 봤냐고 내가 물어보니 남편 말로는 내가 중간에도 깨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난 전혀 기억이 없다.
- 우리 아기들, 만날 수 있을까?
낳고나서 새벽의 기억은 뒤죽박죽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른둥이의 출생주수에 따른 생존 확률을 계속 찾아봤던 것 같다. 23주 4일. 아직 폐도 성숙되기 전이고 나는 심지어 임신 당뇨 검사도 하지 않은 주수인데 이렇게 빨리 낳게 되다니. 속상한 마음에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면서 핸드폰에 설치했던 각종 임신관련 어플을 지우고 커뮤니티도 탈퇴했다.
우리 연말이와 정산이의 출생 체중은 각각 630g, 570g 이었다. 소아과에서는 아마 자발적 호흡이 안되어서 기관 삽관을 하게될거라고 했었다. 무사히 삽관해서 숨은 쉬고있는거겠지 우리 아기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해줬겠지? 하면서 걱정스럽게 정보를 찾아보다 우리 둘 다 까무룩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났다.
이 날 새벽이었는지 다음날이었는지 남편은 소아과에서 연말이와 정산이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말로는 아기들이 나오자마자 바로 곁에 있던 소아과 선생님들이 기관 삽관을 하는데, 성공적으로 삽관이 될때까지 옆에서 계속 시간을 불러준다고 한다. 연말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정산이는 3분? 5분 가까이 걸려서 겨우 성공했다고 했다. 둘다 폐 성숙 이전에 나왔기 때문에 당연히 자발적 호흡은 불가하고 당분간은 이렇게 인공호흡을 해야할 것이다.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층에는 초저체중으로 태어난 아기들이 무사히 엄마아빠 품에 안겼다는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곳곳에 붙어있는데,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보니 세상 일이 뭐든지 장담하면 안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그 게시물에 있던 아기 몇주에 체중은 몇으로 나왔다고 했지? 물었다. 우리 연말이 정산이보다 주수는 오래 되었지만 체중이 훨씬 적었다. 우리 아기들도 무사히 집에 올 수 있겠지? 우리 무사히 만날 수 있겠지?
- 너무 멀쩡하네.
아침이 되고 담당 교수님 회진 시간이 되었다.
“몸은 좀 어때요?”
“너무 허무할 정도로 괜찮아요. 아기들에게 미안할 만큼 멀쩡해요.”
출혈이 많았던 탓에 수혈을 한번 더 하긴 했지만 어제까지 아팠던 게 무색할 정도로 나는 금방 회복했고, 오전에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이제 끝났구나.
담당교수님은 하루만 있다가 퇴원하면 된다고하시고, 다인실에서 다른 모자동실하는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1인실에 가겠다고 했다. 다인실에 비해 어마무시한 병실료가 나오겠지만 마지막이니까. 그러기로 했다.
- 첫만남.
연말이와 정산이는 우리에게 울음소리도 들려주지 못하고 바로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졌고, 3개 병동으로 구성된 NICU 병동 중 집중관찰, 치료가 필요한 NICU1로 입원했다. 소아과 쪽에서 첫 면회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고 첫 면회는 남편만 혼자 가서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어오기로 했다. 남편을 면회에 보내고 홀로 병실에 누워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바로 어젯밤에 아기들이 나온 것.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것. 그게 1월 1일이라는 것. 모두 현실감이 없었다.
남편은 걱정이 가득하지만 애써 숨겨놓은 표정을 하고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기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투명한 비닐 같은 것을 두르고 눈에는 안대를, 입에는 호스를, 배꼽에는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는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활력징후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센서에서 나오는 빨간 불빛이 투명한 아기들의 피부 위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무 작고 바스라질 듯 가느다란 몸통과 팔다리가 종이인형처럼 인큐베이터 한가운데에 조그맣게 놓여있는 모습이 볼수록 안타까웠다. 언제 저 작은 플라스틱 상자 밖을 나와 우리 품안에 안길 수 있을까? 그런날이 오기는 하겠지? 우리 아기들.. 괜찮겠지? 온갖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지만 애써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