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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빵떡 Aug 05. 2024

특별한 평범함_나의 임신, 출산 이야기

열세번째. 피할 수 없는

- 이제 혼자 견뎌야해.

17주에 환급이를 보냈을때는 유사산휴가를 썼었고, 이번에 입원했을때는 남편이 가족돌봄휴가와 남은 연차, 내년 연차를 몇개 끌어다가 병실에 같이 있어주었다. 연말이라 마지막 근무일은 오전만 마치고 종업식을 한 관계로 남편이 점심즈음해서 여러가지 짐을 챙겨 병실로 왔다. 원래 상주보호자가 계속 병실 외부를 왔다갔다하면 안되는데, 남편까지 계속 보호자 식사를 병원에서 시켜먹을 순 없으니 며칠에 한번씩 집에서 먹을 것과 몇가지 필요한 것들을 실어나르고, 갔다오는 김에 집에서 자고 오라고 보냈다가 아침에 와서 집에 가기 전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밤에 병실에 혼자 누워있으면 우울해 미칠 것 같았지만, 보호자 침대는 병실 침대보다도 더 불편해서 거기 누워있는걸 계속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제 2023년도 다 끝나가고 새해가 되면 더 휴가를 쓸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벌어서 병원비를 내야할 것 아닌가.

이제 남편은 다시 정상 출근을 해야하니 일주일에 한두번만 물이나 간식, 생필품 같은 것들을 한꺼번에 가져오기로 하고 혼자 병실생활 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끼니마다 다 먹은 식판도 남편이 매번 옮겨주었는데, 거의 두달째 누워만 지내고 수축방지제가 몸의 모든 근육 전체를 이완시키다보니 혼자 식판을 수거대에 갖다놓으러 가는것도 손이 바들바들 떨려 와장창 할까봐 불안했다. 화장실 빼고는 누워 지내라고 했는데 식판도 화장실 갈때 갖다놓고 와야하나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계속 두달만 버텨. 두달만 버텨 되뇌었다.

나름 넓지만 어쩔 수 없이 답답한 병실 커튼 안쪽


- 안바쁜데 바쁜 하루

병실의 밤은 10시쯤 시작된다. 고위험산모입원실은 4인이 사용하고 24시간 간호를 받는 병실이라  밤 10시경이 되면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소등하겠습니다’하면서 불을 끈다. 불을 끄고나면 각종 기기들이 뿜어내는 차가운 빛만 가득차고 절간처럼 조용한 병실이 더 조용해진다. 일반병실도 혼자쓰지 않는 이상은 10시쯤되면 불을끄고 암묵적으로 밤 모드에 접어든다. 하지만 밤이라고 모두 조용히 잠만 잘 수 있는건 아니다. 11시에 간호사 교대시간이 있어서 퇴근하는 선생님과 출근하는 선생님이 같이 회진하면서 환자마다 처치나 컨디션 같은 것들을 체크한다. 그리고 12시쯤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등을 확인하고 아기들이 잘 있는지 심음측정까지한다.

아기들은 뱃속에서 계속 움직일테니 측정할때마다 약간씩 위치가 변동되어서, 심음측정을 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기도 한다. 연필 비슷하게 생긴 측정 막대기 끝에 초음파 측정할때 쓰는 젤을 바르고 배 여기저기에 지긋이 누르고 스피커를 켜면 뱃속의 여러 잡음 사이로 콩닥콩닥 빠른 템포의 아기들 심장소리가 들린다. 스피커 소리가 꽤 크고 옆 병상 사이에는 한장의 커튼 뿐이라서 옆자리 산모와 아기의 소리도 들리는데, 남의 아기들이지만 열심히 뛰고 있는 심장소리까지 무사히 다 듣고나면 마음속으로 휴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보통 많은 산모들이 항생제를 맞거나 수축방지제 같은걸 맞고있는데, 항생제는 시간마다 계속 맞아야하고, 수축방지제도 수액을 다 소진하지 않았더라도 사용기한이 24시간, 48시간 이렇게 정해져있어서 일정 시간마다 수액을 계속 교환해줘야한다. 해서 새벽시간에 자다가 중간에 깨기도 한다. 사실 주사 자리는 이미 잡혀있고 줄에 꽂힌 수액만 바꾸는거니 내가 할건 없다시피 하지만 이 병실에서 밤에 아무것도 모르고 꿀잠자는 산모는 거의 없으리라 본다. 3교대하는 간호사 선생님들도 새벽에 만나면 어쩐지 심연에 있는 피곤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잠을 설치다가 깨어난 새벽 다섯시? 여섯시?쯤에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를 재고 아기들의 심음측정까지 한번 더 하고나면 아침먹는 시간까지 한두시간쯤 시간이 남는데 이때가 그나마 하루 중 가장 깊은 잠을 잤던 것 같다. 가끔 있는 체중 측정이나 소변검사, 채혈이 없으면 아침식사가 나오기전에 잘 자둬야 한다. 그러고나면 오전, 낮까지는 나름 기분이 상쾌했다.

아침에는 회진이 있어서 회진 전 가장 최신의 상태로 검사가 필요할테니 매일 또는 며칠에 한번씩 초음파 검사도 받는다. 잠에 취한 산모들은 호출에 불려나와서 초음파 검사실 앞에 졸린눈을 부비며 쪼르르 앉아 걱정반 기대반으로 순서를 기다린다. 오늘도 제발 무사하기를.



- 계속 느껴지는 통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입원생활이 계속되며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천정에서 바닥, 바닥 그 아래까지 오르락 내리락했다. 마음이 그래서일까? 17주에 환급이를 보낼때 느껴졌던 생리통 비슷한 통증이 잊을만하면 느껴졌다. 특히 저녁 이후 밤이 되면 통증의 정도도 커지고, 빈도도 잦아졌다. 그러다 조금 잠들었다 일어나면 괜찮아지기도 하고 아침이 되면 배탈났다 나은것처럼 개운해지기도 했다. 보통 회진은 아침, 저녁 이렇게 두번 있어서 회진 시간에는 거짓말처럼 아프지 않아서 매번 ‘지금은 괜찮아요’ 했던 것 같다. 나중에 말씀드렸더니 원래 밤이 되면 더 심해진다고 하시더라.

출혈도 최근 며칠동안 계속 몇시간마다 있다없다를 반복했고, 통증도 하루마다 있다 없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반복하다 2023년 12월 31일이 저물어갈 무렵, 그래도 통증은 잦아들어서 어두운 4인병실에서 보호자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과 손을 꼭 잡고 새해 복 많이 받자 속삭이고 다시 잠에 들었다.



- 너무 아파.

결국 새해 맞이는 병실에서 하게 되었다. 이제 자포자기다. 퇴원은 무슨 퇴원이냐. 여기서 버티자. 퇴원하는게 더 불안해. 24주까지만 딱 이틀만 버티면 트랙토실도 맞아볼 수 있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자.

아주 길어질 것 같은 입원생활에 대비해서 병실 침대에 푹신한 토퍼를 깔았다. 아휴, 이제 좀 살만하네. 임산부 쿠션에 팔을 올려놓을 인형까지, 최대한 편하게 자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남편은 이제 내일부터 출근을 해야하니 오늘은 10시 소등할때 집에 가기로 하고 각종 필요한 물건들을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도록 정리해주었다. 좋아. 준비는 다 됐어.

혼자 지낼 생각을 하니 싱숭생숭한 와중에 조금씩 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오후 다섯시반쯤 누워있는 자세를 바꾸려고 하니 아랫배가 뭉치는 느낌이 한번 들었고, 싸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이 느껴질때마다 핸드폰으로 통증의 정도를 1에서부터 10까지로 기록했는데, 처음엔 그냥 기분나쁜 생리통쯤이었던 1.5~2정도의 통증이 나중에는 3~4정도가 되더니 밤 9시가 되었을 무렵, 이 정도면 진통제를 먹어야겠는데 할만큼 4에서 5로 심해졌다. 통증의 간격도 4~5분 밖에 되지 않았다.

남편이 곧 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어서 그런걸까? 마음을 편히 먹어야지 생각하다 10시가 거의 다 되었다.

“이제 슬슬 짐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해.”

“응. 이따가라도 아프면 꼭 얘기해.”

그렇게 옷 갈아입는 걸 지켜보는데 왈칵. 또 출혈이 느껴졌다. 통증도 5~6으로 심해지고 간격도 3~4분밖에 되지 않았다.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누르는데 출혈이 계속됐다. 양이 꽤 많았고 당직의 선생님 포함한 몇분이 우르르 불꺼진 고위험산모입원실 내 병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집에 가려던 남편도 병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화장실에 가고싶은 느낌이 계속 들었는데 소변줄을 해야한다고 듣자마자 화장실 한번 다녀와서 달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출혈양 체크를 해야한다고 잠깐 참으라고 했다. 아.. 출혈이 심하긴 하구나 지금. 그렇게 통증과 출혈이 계속되고 피로 푹 젖은 패드가 몇번이나 교체된 후 나는 베드째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 진통?

옮겨진 곳은 분만실이었다. 피가 힘만 주면 우르르 쏟아내릴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초음파 검사를 받고 패드를 또 몇장이나 적셨다. 나중에 남편에게 듣기로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베드 아랫쪽으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고 했다. 피는 치워도 치워도 계속 흘렀고 급기야는 수혈까지 받았다.

당직이었던 선생님은 처음보는 분이었는데 침착하게 나의 상황을 진단해보고 나의 담당 교수님과 통화했다. 요는, 진통이 시작됐고 아기들은 다 내려와있고 이미 경부가 열렸고 출혈량이 상당하다. 맥수술로 묶은 부분은 풀고 긴급히 분만해야할 것 같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이틀만 더 버티면 새 약도 쓸 수 있는데.. 이젠 정말 안되는거구나.

선생님은 나의 상황에 대해 다시 직접 침착하게 설명해주었다. 지금 느껴지는 통증은 진통이고 이미 시작된 진통은 막을 수 없다. 맥수술로 묶은 부분은 빨리 풀어야한다. 그래.. 그랬지.. 지난번 묶을때도 그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묶더라도 진통이 와버리면 수술한 부분이 파열될 수 있어 위험하니 바로 풀어야한다고. 지금이 그런 상황인거구나. 낳아야 하는거구나.

아기들은 23주 4일을 뱃속에 있었고, 가장 최근에 추정한 몸무게는 500그램이 좀 넘었던 것 같다. 법적으로는 반드시 살려야 하는 태아의 주수가 정해져있는데 우리 연말이와 정산이는 그 주수보다 적었기 때문에 부모가 선택하도록 소아과 선생님이 설명을 위해 분만실로 왔다. 주수가 많이 적어서 낳아서 살리더라도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 하지만 어떤 부모가 이럴때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해볼 수 있는데까지 해달라고했고, 소아과 선생님도 최선을 다하시겠다고 했다. 지난달 그날처럼 우리는 또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셨던 걸까? 보통 정상 주수를 채우고 출산하는 산모들은 아마 35주 넘어서인가에 몇번에 걸쳐 폐성숙주사를 맞는걸로 알고있는데, 담당 교수님이 폐성숙주사를 처방해주셔서 나도 며칠전에 한번, 그리고 오늘 한번 더 맞았었다. 결국 조기 진통이 올 것을 예상하셨다는거구나. 우리 연말이와 정산이, 정말 이렇게 빨리 만나야만 하는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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