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두번째 입원
- 수축
임신 관련한 커뮤니티 글이나 댓글을 보면 배뭉침, 수축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뭉침이라는게, 직접 겪어보지 않고 말로만 들어본 신체의 느낌이라서 막상 실제로 경험했을때 이게 뭉침인지 발로 차는건지 아니면 그냥 근육 어딘가가 움직인건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입원까지 다시 하고 보니, 어제인지 그제인지 느껴졌던 그것이 뭉침, 수축이었던 것 같다. 자궁 어느 한 부분이 약간 오그라들듯 모아지는 느낌. 자세를 바꾸니 금방 풀어져서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아마 내가 직접 느끼지 못한 뭉침도 있었나보다.
이전 입원에서 했던 것처럼 허리에 밴드를 두르고 배에 동그란 수축 모니터 기계를 올려놓았다. 주기적으로 수축이 잡힌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환급이가 빠져나가고 혹여나 수축이 와서 연말이, 정산이까지 빠져나올까봐 수축방지제를 맞다가, 다행히 수축이 관찰되진 않아서 먹는 수축방지제를 처방받고 퇴원했었다. 병원에서 주사로 맞는 수축방지제는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주수와 산모의 상태에 따라 어떤 약을 쓸지 정하는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황산마그네슘만 썼는데, 이 약을 맞으면 소변 배출이 잘 안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모든 섭취량은 물론 화장실에 갈때마다 배설량을 측정해서 기록해야한다. 일단 지난번처럼 황산마그네슘이 팔에 꽂혔고, 화장실 가는게 너무 귀찮게 만드는 배설량 측정용 용기도 받았다. 주사 초반에는 양이 많게 들어가서 신체변화를 기민하게 관찰해야하는데, 지난번처럼 얼굴과 머리쪽으로 조금 열감이 느껴졌다. 황산마그네슘을 맞으면 정확한 용량을 주사하기 위한 기계가 같이 달리고, 그 옆에 고위험약물이라는 태그가 붙는다. 그래도 아기들을 건강하게 지킬 수만 있다면 뭐, 병원에서 알아서 안전하게 처방해주는거겠지. 아기들 건강하게 더 품고 있게 해주세요 제발. 37주까지는 안바라요. 30주만이라도 넘기게 해주세요.
- 부작용과의 싸움
야속하게도 이번에는 황산마그네슘만으로 수축이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보통 라보파라는 약을 쓰거나 트랙토실이라는 약을 쓰는데, 아직 21주밖에 되지 않아서 24주부터 사용할 수 있는 트랙토실은 사용할 수 없었다. 라보파는 폐부종이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있어서 아주 조심히 써야하는 약이라고 들었다. 트랙토실은 자궁만 표적으로 작용하는 약이지만 24주부터만 사용이 가능하고, 24주라고 하더라도 비용이 비싸서 건강보험에서 커버되는 3싸이클까지만 저렴한 가격에 투여받을 수 있고 그 이후에는 한 싸이클에 수십만원이라고 한다. 한 싸이클은 2박3일정도 맞을 수 있는 양이다. 그래도 그게 대수랴. 아직 얼굴도 마주하지 못한 소중한 생명이 오고가는 문제인데.
결국 라보파를 추가로 달았다. 숨이 찬다든지 평소와 다른 증상이 있으면 꼭 이야기해야한다는 당부를 들으며 누워서 주사액이 똑똑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는 별로 숨이 차지는 않았다. 하루인가 이틀쯤 라보파를 달았을까? 회진때 담당 교수님이 상태는 어떤지 이것저것 물어봐서 대답하는데 내가 말하는게 숨이 차는 것 같았나보다. 폐 X-ray상으로 폐부종 소견은 없었지만 부작용이 염려스러우셨는지 라보파는 중단해보자고 하셨다. 병원에 24시간 누워있으면서 할거라곤 검색뿐인데 라보파에 대해서 검색해보니 중단했을때 반동수축이 자주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걱정이 됐지만 부작용 때문에 계속 무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 지겨운 출혈
입원 며칠째였을까,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갔는데 굉장히 불쾌하고 불길하게도 뭔가 울컥하고 나오는 느낌이 났다. 일어나서 들여다보니 그냥 핏덩어리가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 신체 조직 일부가 나온 것 같은 모양이었다. 하아.. 이게 대체 뭐지? 핸드폰으로 얼른 사진을 찍고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렀다. 잠시후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사진을 찍고 주치의 선생님께 전달하겠다고 했다. 너무 무서웠다.
초음파로 아기들이 잘 있는지 확인해야했다. 주치의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고 초음파실로 갔다. 다행히 연말이와 정산이는 무사했다. 환급이가 나간 자리에 고여있는 피와 어떤 부산물 같은 것이 수축때문에 계속 나오는건가보다. 만약에 고여있는 피와 어떤 물질이 수축을 일으키는걸까? 그러면 힘을 줘서라도 다 나오게 해야하나? 생각했다. 초음파를 봐줬던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불필요한 힘을 주는게 좋지는 않겠지.
그렇게 며칠을 하루에 두세번씩 화장실에 갈때마다, 누워있다가 앉으려고 몸 어딘가에 힘이 들어갈때마다 피가 흘러나왔다. 그럴때마다 기분이 축축 처졌다. 초음파로 봤을때 남아있는 피의 양이 줄어들었나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면 계속 피가 나기까지 하고있는건가? 암담하다.
원래 아기집이 두개였는데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한쪽이 유산 되었을때, 유산된 아기집은 꺼내지 않는다고 했다. 태반을 꺼내다가 다른 아기집까지 나와버릴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러면 떠나보낸 아기와 아기집, 피와 양수같은 것들은 뱃속에서 어떻게 되는건지 물어보니 자연적으로 몸에 흡수된다고 한다. 그럼 왜 환급이 자리에 남은 것들은 흡수가 안되고 남아있는걸까. 그건 모르겠다. 무작정 흡수될때까지 기다려야하는거겠지? 화장실에 갈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또 며칠이 흘러갔다.
- 깨발랄한 연말이와 정산이
지겨운 입원생활에서 한가지 좋은 점을 (억지로) 찾아낸다면 아기들이 무사한지 심음측정, 초음파로 계속 본다는 점이다.
초음파를 볼때마다 연말이와 정산이는 경부방향으로 계속 발을 빵빵 차댔다. 담당의 선생님은 얘네 신났다며 신나게 움직여대는 꼬물꼬물 네개의 발이 비치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초조한데 너네는 신났구나?"
"그래도 활발하게 잘 있어서 좋네요."
맞아. 움직임이 없는 것보단 훨씬 나은거지. 근데 얘들아, 경부는 그만 차줄래? 더 짧아지면 안된단말야.
- 다시 라보파
출혈이 계속 있고 수축도 주기적으로 나타나서 라보파를 다시 달았다. 아마 반동 수축이었을 것 같기도 한데, 부작용 때문에 그냥 계속 맞고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도 효과가 있기를 기대해보는 수밖에.
주사액을 거는 폴대에 다시 주사액 용량을 조절하는 기계가 두 대 달렸다. 처음 라보파를 달았을때랑 같이 처방 가능한 최저용량이 설정되었다. 제발 잡혀라 수축.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수축은 계속 나타났고 마그네슘과 라보파 용량이 매일 오르락 내리락 조절됐다.
- 언제 퇴원할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 즈음 입원해서 며칠이 지났고, 지난번에도 일주일쯤 있다 퇴원했으니까 이번에도 비슷하려나?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낼 수 있으려나? 살짝 기대를 했지만 나의 자궁은 연말연시따위 안중에도 없으니 눈치없게 수축을 계속했다. 크리스마스라고 뭐 대단한 걸 할 계획은 없었지만 케이크 한조각 자르면서 잠시나마 즐거워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니 해소되지 않는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병실 침대에, 남편은 보호자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출혈만 멈추면 집에 가게 해주려나? 오늘 수축 안잡히면 퇴원시켜주려나? 매일의 퇴원여부를 점쳐봤지만 의미 없었다. 이때쯤 되니 ‘언제 퇴원해?’라는 말을 듣기도 짜증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도 알고싶다고!
그래도 연말이라 제왕절개 산모들이 다들 출산일을 연초로 조정해서 그런지 입원 환자가 많이 없어서 2인실을 1인실처럼 꽤 오랜기간 사용할 수 있었다. 4인실이 인당 자리가 넓고 비용도 2인실에 비해 훨씬 저렴해서 오히려 좋지만 연말이라 1인실처럼 쓸 걸 기대하고 그냥 2인을 썼는데, 다행히 입원한 동안 며칠을 제외하고는 거의 혼자만 쓰게 되었다. 그나마도 다른 산모와 계속 같이 있었으면 남편하고 말도 편하게 못하고 쥐죽은 듯 조용히 있으나 우울증이 생겼을 것 같다. 둘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낄낄거리며 화제도 돌리고 같이 병상위에 달린 TV를 보면서 지냈으니 그나마 견뎠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도 어느 순간 화가나고 눈물이 쏟아지고 우울해지는 때가 찾아왔다. 괜찮을거야, 30주까지만이라도 버티자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두달을 어떻게 견디지? 하는 생각에 24시간이 숨막히도록 길게 느껴졌다.
열심히 생각한다고해서 내가 무언가 할 도리가 없음에도 머릿속에서는 ’그때 그랬더라면‘만 계속 반복 재생됐다. 그렇게 의미없는 생각과 자책을 반복하면서 며칠이 또 지나갔고 연말이 되었다. 아.. 새해 맞이도 병원에서 해야하는가보다.